드라마

[결산]선덕여왕 감동과 슬픔의 블로깅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12. 23. 09:15

선덕여왕, 캐릭터와 설정남고 작가정신 잃고

[데일리안 김헌식 문화평론가]미실은 남고 덕만은 빛이 바랬다. 미실과 함께 < 선덕여왕 > 은 전성기 시청률을 잃었다. 상대적으로 미실의 사후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2부 연장 방영의 탓일까. 미실에 너무 의존할 탓일까' 하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근본적인 것은 설정일 것이다. 후반부는 자중지란과 사랑에 대한 억지스런 부각에 불과해보였고, 자중지란은 전투신의 가미로 남성 시청자를 잡고, 비담과 선덕의 로맨스는 여성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랑의 애절함은 멜로의 요소는 아니었다. 불가항력으로 둘의 사랑이 불가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 대장금 > 과 < 서동요 > , < 히트 > 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로맨스와 멜로가 약하다는 점이 여실히 증명이 되었다.

어쨌든 캐릭터 면에서 미실과 초기의 비담은 수확이었다. 또한 다양한 꽃미남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여성 시청자들의 기호를 맞추어냈다. 이는 대중문화콘텐츠에서 요구되는 자기애적 만족을 이루어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터넷을 활용해 선수 교체 투입하듯이 증폭과 노이즈 효과를 노린 것은 주효했다.

약자였던 덕만이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전형적인 석세스 스토리는 이번에도 통했다. 버려진 여성 주인공이 끝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전형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광대한 실크로드의 문명사적 정신과 가능성은 신라에 갖혀버렸다. 초반부의 위대한 스케일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결국 좁은 왕궁 안에서 사랑에 갈등하는 인물로 전락시켰다. 한편 덕만이 진정한 약자였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미 점지 받은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실이 대단한 약자형 영웅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결국 악녀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덕만은 중간자적이 캐릭터로 만들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덕만이 여왕이 되겠다고 한 것은 약간은 억지스럽지만, 개인적인 설욕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무조건 추상적인 대의명분에만 휩싸이지 않는 개인적인 동기도 가미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설욕을 위해 민중담론과 정치 치세의 철학은 수단이 되었지만 그 수단은 적어도 강자 귀족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첨성대와 사다함의 매화-책력을 연결시키며, 미실과 대적해가는 덕만의 활약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아이디어가 부각되는 설정이었다. 여전히 민중성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덕만의 모습은 충분히 가치평가를 해줄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미실을 넘어서 기득권 세력을 넘어서 어떤 성과를 내었는지 그 구체성이 없었다. 김유신에 대한 인위적인 영웅성의 부여는 석세스 스토리에 대한 부담으로 보였다. 비담은 사라지고 유신은 남았지만, 김유신에 대한 찬양은 그의 처세 행적에 대해 친일파논란과 맞물리기도 했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은 한동안 사극을 지배했던 '당당녀' 강박증에서 벗어났다. 부드럽게 뒤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2인자 리더십을 부각시켰다. 창과 검을 들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여전사를 다루었던 < 천추태후 > 는 그런 면에서 시청자에게서 외면을 받는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들은 진화 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여성의 파워를 적절하고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단순히 여성의 정치적 움직임을 암투라는 부정적인 단어로 평가하는 시선에서 < 선덕여왕 > 은 자유로웠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덕을 본 것은 < 화랑세기 > 였다. 드라마 < 선덕여왕 > 은 < 화랑세기 > 의 내용에 많은 의존을 했고 위서(僞書) 평가를 받으며 주류사학계에서는 거부하던 책이 대중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거꾸로 역사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역사 왜곡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미실의 난을 칠숙과 석품의 난으로 부각시키는 과정이 대표적이었다. 인터넷 시대의 팩션 스타일 사극의 창작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이는 나름 드라마와 역사적 논란의 상보적 관계라고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상보적 과정이 더 필요함을 부각시켜 내었다.

8개월 동안 ´선덕여왕'이 장기집권(?)을 하면서 다른 드라마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고, SBS드라마 < 천사의 유혹 > 은 편성 시간대를 일부러 9시대로 앞당기기도 했다. < 천사의 유혹 > 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매우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것이다. 이 사례는 한국 드라마 환경에서 편성전략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연장방영은 다른 방송사 편성 전략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는 것만이 아니라 드라마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연장 방영은 최악의 선택이었고, 작품 자체의 일관된 창작 환경을 해쳤다. 그러한 면에서 '선덕여왕'은 작가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었다. 만약 이런 드라마에게 작가상을 준다면, 작가들은 연방방영에 대해 더욱 무감각해질 것이고 작가정신은 더욱 퇴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