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분석

‘소년 심판’은 세계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공유할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2. 3. 3. 18:59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 심판’리뷰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강력한 선언이다. 한국 드라마는 당사자성이 매우 강해지고 있다. 범죄자를 쫓는 경찰의 자녀가 피해자가 되는 작품은 참 많았다. 물론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고통과 눈물이 투영된다. 이러한 점은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 심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번에는 재판관들이다. 이분법적으로 범죄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도 않을뿐더러 그 범죄를 당하거나 저지르는 당사자도 분리될수 없다. 누구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의 주도자나 연루자가 될 수 있다는 상대적 관점이 한국드라마에 강해지고 있는 점이 이 소년 심판에도 투영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사건에 대해서 판결을 내리는 일을 업으로 전문하는 법관들이 때로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리는 것을 한 번쯤은 느낀다.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그 피해 당사자가 된다면 그런 판결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피해자들은 그러한 점을 들어서 절절히 호소하고 싶을 것이다.

 

드라마 소년심판은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서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다만 피해자의 관점이 아니라 법관의 관점을 아주 내밀하게 그려낸다. 피해자의 억하심정은 법관의 심정적 변화에 영향을 주는 외부 자극요인이다. 핵심은 법관들이 소년범들이나 가족들에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이상적인 관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물론 그 이상적인 점은 현실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두고 제시되는 일종의 현실적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법관은 아이를 잃었다. 그것도 어처구니없이 아이들이 장난으로 떨어뜨린 벽돌에 자신의 아이가 맞았던 것이다. 그 사건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는 비극이지만 더욱 더 고통을 당하게 했던 것은 바로 법관의 태도였다. 같은 법관이 봐도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서 더 이상 할말을 잃게 된다. 법관도 이러한 데 일반 시민들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이를 잃은 고통 그리고 자신에 대한 죄책감,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법관의 업무는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비극은 그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소년범들은 사법 체계의 빈틈속에서 악마로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커저버린 그것을 감당해야할 무게는 너무나 버겁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황속에서 자신만의 선택과 실천을 보여주는 주인공 역의 김혜수 연기는 탁월하다. 관록의 연기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단히 탁월하게 원맨셔의 참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항상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법관, 그리고 소년범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갱생을 해야한다는 인도주의적 관점. 그것들이 선한 명분과 관계없이 악한 범죄자를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좋은 명분 때문에 다른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거나 인권 유린의 범죄 수단이 되어가는 현실은 결국 다른 사과를 보호하기 위해서 썪은 사과를 도려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선택이 반드시 옳은 것일까. 그것은 절대적인 정답이 될 수가 없다. 상황에 맞게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년범에 관한 법 폐지를 두고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하는 생각의 계기는 준다. 물론 소년범죄에관한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화적 가치 지형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가 이분법으로 나눠 사고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관의 당사자성이 부각되는 맥락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건의 당자자와 이를 판결하는 사람, 남과 여, 어른과 아이... 등등. 무엇보다 소년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하고 유연하게 봐주어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행위 그 자체를 볼 필요가 있는데 그 행위와 이분법적 범주에서 스스로 혼동을 하고 있어 문제를 키우고 있는 사안은 비단 촉법 소년에만 한정되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정책 사안에서 이를 투영할 수 있는 프리즘이 될 것이다. 범죄는 범죄고 범죄자 행위는 분명 그 행위이다. 어린이 미성년자를 바라보는 유치한 관점이 언제든 역습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지만 주인공처럼 혐오가 전적인 가치관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있다. 그것은 소년범죄에 대한 낭만적 감성을 버리고 냉철하게 대해야 한다는 각성이다.  

 

아마도 당사자성을 생각했을 때 이 드라마는 10대와 그 가족들이 열렬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이 보기에 힘든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제나 그렇다. 당사자를 배제하는 현실의 콘텐츠 시청 기준. 그럼에도 볼 수 밖에 없다. 다만 좀비물 처럼 장르성이 약하기 때문에 폭발적인 글로벌 1위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한국드라마들이 그간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케이 콘텐츠의 대표적인 스타일인 감정의 호소력과 공감의 스토리 라인이 진한 휴머니즘을 구가하기 때문에 신파 콘텐츠의 특징을 잇는다.

글/김헌식(박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