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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스피치´ 왕의 연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2. 7. 11:39

 ´킹스스피치´ 왕의 연설은 어떠해야 하는가


<김헌식 칼럼><킹스 스피치>(King´s Speech)와 지도자의 삶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연설에 어린 아이부터 청년, 노인 그리고 가난한 빈민에서 부터 부유한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마디 한 마디 흘러 나올 때마다 놓칠세라 귀를 기울이고 있다. 독일과의 전쟁에 임박하여 국왕이 말하는 연설인지라 단어하나가 사람들의 미래와 삶을 좌우할수도 있다. 마침내 연설은 끝나고 군중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그 누구도 연설을 한 사람이 언어장애인이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킹스스피치>(King's Speech)의 마지막 장면이다. 연설을 한 영국 국왕 조지 6(콜린 퍼스)와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언어장애인이었던 조지 6세가 마침내 대중연설을 해냈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인 조지 6세는 대중연설에 나서면 읽는 것 조차 제대로 못하는 언어장애인이다. 대중연설만이 아니라 일상의 대화에서도 말을 더듬는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이다.

 

대개 둘째 아들은 왕위와는 관계 없지만, 조지 6세는 다른 상황을 맞게 된다. 역사에서 장자들이 왕의 후계자가 되는 사례가 많다. 이에 불만을 품은 둘째 이하의 다른 형제들이 저항하는 경우도 많다. 첫째 아들보다 다른 동생이 능력이 많아 뒤늦게 왕위 승계를 포기 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자신보다 능력이 없는 첫째 형에 대한 불만으로 모반을 일으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공식적인 사서를 보면, 백제 창건 때 첫째 비류 대신 둘째 아들인 온조가 시조로 규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둘째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난데없이 생각지도 않았던 왕위가 자신에게 떨어지자 난감했던 것이 조지 6세였다. 에드워드 8(가이 피어스)는 이혼녀와의 사랑을 선택한다. 이 때문에 왕을 포기한 것인데, 더구나 히틀러가 이끄는 나찌와 제3제국을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새로운 부인은 독일인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로써 독일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에드워드 8세는 왕위를 동생 조지 6세에게 던져준 것이다.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왕을 꿈꾸지 않았던 그에게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정치 사회 지도자는 말을 잘해야 한다. 그것은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대중들, 그러니까 시민과 국민들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잘 전달할수 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유대감 넘치는 연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공감의 연설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일 것이다.

 

스피치(Speech)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를 말로 전하는 것이다. 좋은 연설에는 세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선 연설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중요인사라면 연설을 듣는 사람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연설하는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설의 내용일 것이다.유명하거나 중요한 사람이라도 연설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그 연설 자체가 의미나 가치가 적을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인사라도, 평소에 좋은 연설을 하는 사람이라도 내용이 항상 좋은 연설을 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중요한 인사의 연설이 모두 그 내용 측면에서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기법이다. 이른바 연설 테크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요한 인물이 연설의 내용을 어떻게 잘 전달하는가의 문제이다. 억양이나 끊어읽기, 유머의 사용, 목소리의 변화, 얼굴 표정 등이 여기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는 온국민을 상대로 한 라디오 연설에 임하는 조지 6세의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연설 하세요." 연설을 듣는 사람들-시민과 국민들을 자신의 친구처럼 생각하고 연설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정치지도자에게 매우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긴장하던 조지 6세는 오랜 침묵 끝에 말을 떼고 점차 연설의 페이스를 찾아간다.

 

지도자의 연설이 중요한 이유는 그 메시지 자체보다는 상징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 위기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도자의 한마디 말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위기와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설은 상징적 상호 작용에서 중요하다. 이는 심리적 위안 효과일 수도 있다.

 

영화 킹스 스피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연설을 잘못한다는 것은 지도자의 품격이나 이미지의 훼손으로도 이어진다. 나아가 국격과도 연결되기도 한다. 그만큼 연설은 지도자의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반드시 유창한 연설이나 테크닉이 상징적인 측면에서 품격을 좌우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도자의 삶 자체가 연설의 테크닉과는 관계없이 대중들의 지지와 설득을 이끌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또 한 명의 언어장애인이 있다. 그의 언어장애는 조지 6세에 가려 잘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바로 처칠이다. 처칠은 조산아로 때어나 말을 잘 더듬었고 학습지진아라는 딱지가 붙을 만큼 그는 일생동안 낙제의 연속이었다. 옥스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일곱 번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는 내려오기도 했다. 유창하고도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연설도 아니고, 고도의 테크닉이 있는 말도 아니었지만,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열광의 함성을 질렀다. 처칠이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학적부에 희망없는 아이로 기재되었고, 중학교 때는 모국어인 영어과목에서 3년동안 낙제를 받았으며, 케임브리지나 옥스포드를 가지 못하고 응시한 육군 사관학교에서는 두번이나 낙방했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그는 실패가 성공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테크닉과는 관계없이 수많은 명언을 남긴 정치지도자로도 유명하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삶 자체일 것이다. 그 삶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명연설의 전제조건이다. 적대국인 독일과 친한 에드워드 8세는 이미 그 유창한 연설 테크닉과는 관계 없이 국민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삶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왕위를 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한 이유일지 모른다. 영화와는 관계없이 조지 6세는 비록 연설의 테크닉은 부족해도 그 상황에서 진실을 전할 수 있는 자격과 마음은 충분히 존재했다. 적국에 우호적인 지도자가 시민에게 적국과 대항하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신뢰와 설득력, 상징효과도 없다.

 


영화 킹스 스피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지 6세가 항상 연설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였다. 항상 멋지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더욱 그를 연설 못하는 지도자의 악순환 심리에 빠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연설을 할 수 없었던 조지 6세는 더욱 그러한 심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지도자의 연설론을 언급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연설을 못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영화 <킹스스피치>를 통해서 다시금 확인할 수도 있다.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말대로 연설은 친구에게 말하듯이, 음악을 들려주듯이 하라는 말은 수평적 거버넌스 시대에 부합하는 말이 될 것이다. 친구와 가족은 연설의 테크닉이 떨어져도 믿어주는 신뢰의 관계가 전제된다. 친구와 가족에게 거짓, 진실이 아닌 것을 말을 할 수는 없다. 시민과 국민은 함께 가야할 친구이고 동반자의 가족이다, 시민과 국민은 설득의 대상이나 정책집행자의 대상, 명령의 수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길수록 말 더듬이가 된다. 그렇지 않을수록 명연설가 지도자가 된다.

 

/김헌식 평론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