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블라인드´ 여느 시각장애인 영화와 다른 점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12. 27. 20:06

시각장애인은 무조건 청각이 발달해있다는 건 왜곡

-2011년 8월



영화 블라인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무사 <백동수>에서 검선 김광택(전광렬 분)은 한 팔을 잃었음에도 그의 칼 쓰는 솜씨가 그렇게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각고의 노력을 다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의 장애인 검객 자토이치는 눈이 안보임에도 최고의 검객이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히 눈이 안보이는 것인지, 일부러 눈을 감은 것인지 확인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황정학(황정민)도 장애인 검객이었는데, 그는 하얀 눈을 드러내며 자신이 완전히 눈이 안보이는 시각 장애인임을 드러내 모호한 장애인 자토이치 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장애인 정체성을 보인다. 황정학은 청각이 매우 발달하여 칼 소리와 상대방의 움직임으로 칼을 쓴다. 

<사랑이 머무는 풍경>(At first sight, 1999)에서 에이미(미라 소르비노)는 시각장애인 버질(발 킬머)을 만나 그를 통해 빗소리에도 섬세하게 다른 구분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버질은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이 청각이 매우 예민하고 섬세했다. 

<천국의 속삭임>(Red Like The Sky, 2006)은 이탈리아 최고의 음향감독 시각장애인 '미르코 멘카치'의 실화를 다루면서 장애인의 청각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그는 버질과 같이 안마사에 종사하는 것을 거부한 마르코는 온갖 소리를 수집하더니 최고의 음향감독이 되었다. 

이러한 점들은 모두 시각장애인들이 눈이 보이지 않지만 청각적으로 매우 예민하거나 뛰어나다는 점을 나타낸다. 영화 <줄리아의 눈>에서는 점점 시각을 잃어가는 줄리아가 마침내 보이지 않는 살인범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되는 충격적인 진실을 다루고 있었다. 범인은 자신의 가치가 사람들이 눈이 안보일 때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여성들의 눈을 안보이게 약물을 투여하고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만든다. 그러한 범인을 퇴치하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에 쓰지 않던 청각이다. 

사라마구의 원작을 영화화한 <블라인드니스>에서도 시각장애가 걸리자 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통탄해하면서 비로소 평소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다른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한 순간에 눈이 안보이게 되자, 온갖 비도덕적인 행태들을 한다는 것이다. 시각에 의존한 인간과 문명의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시각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이는 범죄와 수사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무언의 목격자, 1994>에서 특수분장사인 빌리는 영화 세트장에서 스너프 영화를 찍으며 여성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경찰들은 믿지 않는다. 그녀가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청각 장애인이었는데도 말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블라인드>에서 수아(김하늘)은 시각장애인으로 사건 현장을 목격할뿐만 아니라 정작 피해당사자인데도 경찰들은 믿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는 흥미를 자아내기 위한 전형적인 장치다. 진실을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시각장애인이 옳은 진실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도록 하기 때문이다. 영화 <줄리아의 눈>처럼 본인이 자신을 해치려는 범인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블라인드>에서도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던져준다.

더구나 이 영화에서는 장애인이 시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청각이 매우 뛰어난 점을 부각한다. 또한 시각 외에 청각 그리고 촉각이 매우 예민하게 발달하고 보통 사람보다는 뛰어난 역량으로 가치를 발휘한다. 영화 <블랙>에서 미쉘도 암흑은 오히려 희망이라며 청각과 촉각을 이용하여 열심히 공부한 끝에 마침내 대학을 졸업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필수적인 전제 바로 약자인 시각장애인이 알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점만을 강조하면 이전 작품들과 변별성이 없어진다. 그러나 영화 <블라인드>에서는 무조건 시각장애인 편을 들지 않는다. 수아가 청각과 촉각으로 거의 정확하게 맞춘 내용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었고 이를 비장애인 기섭(유승호)가 보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장애/비장애의 통합성을 말한다. 두 사람이 합심을 해야 결국에는 난관을 극복하고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많은 영화들에서는 시각장애에 걸리면 청각이 발달하고 어느 경우에는 매우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점은 현실을 과장할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상황을 왜곡할 가능성이 많다. 이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이 안보이는 것은 현실 그대로라는 점에서 <줄리아의 눈>이나 <블라인드>는 장애인 여성이 너무 세련되고 단정하고, 매혹적이기만 하다. 또한 시각의존적인 사회와 문명의 한계와 위험성을 다루는 국내영화가 나올 때도 되었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