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탁구´의 빵의 철학은 떡이었어야했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8:59

<김헌식 칼럼>´김탁구´의 빵의 철학은 떡이었어야했다

2010.09.02 12:27 

 




[김헌식 문화평론가]거성 집안에서 성장한 마준은 진짜 아들이 아니었고, 밖에서 떠돌던 탁구는 진짜아들이었다. 진짜 아들인 탁구는 거성의 경영을 맡게 되고, 마준은 이를 방해하고 자신이 경영권을 찾으려 한다. 구일중(전광렬)과 김미순(전미선)의 아들 탁구와 서인숙 (전인화)과 한승재 (정성모)의 아들 마준의 대결이다. 그들이 다투는 것은 거성이라는 제빵회사의 경영과 막대한 부이다. 

그 부는 바로 제빵계의 전설로 불리는 팔봉선생 (장항선 분)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구일중이 자신의 아들을 팔봉선생에게 보내는 것은 바로 빵에 대한 근본적인 정신을 체득하게 만드는 것. 팔봉은 세상에서 제일 배부른 빵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빵이며 가장 재미있는 빵은 자신이 즐거워서 만드는 빵이라고 했다. 빵은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서 만들어야 하며,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빵은 그자체가 돈이나 부도 아니요 재벌이나 사회적 명예가 아니다. 무엇보다 남을 위하라는 말만 일삼는 교훈적인 틀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자아실현과 도전 정신을 부여하기도 한다. 

음식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다. 그 음식에 쓰이는 재료의 깨끗함이나 건강성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농 식품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빵에는 밀가루만 들어가지 않는다. 부가 재료가 더 풍부한 경우도 많다. 그 부가재료를 결국 요리하는 것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 요리사이다. 

유기농 열풍은 사실 재료에 대한 주목인데, 같은 재료라도 엉망일 수 있다. 유기농의 강조가 전적인 대안이 아닌 이유다.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그것을 만드는 요리사의 정신이나 태도가 그르다면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유기농 재료 0.01%가 들어간 음식을 강조할뿐 가격 인상만을 염두해 판매한다면, 그것은 제조자의 정신의 빈곤을 말해준다. 그러한 상업적 행위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 효율을 우선하는 사고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음식과 요리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 10여년째 텔레비전의 경우, 많은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탐방한다. 맛이 없어도, 맛있게 연출해내는 실력이 점점 더 대단해진다. 그만큼 경쟁은 치열해졌고, 아이템은 고갈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요는 엄청난 때문인지 끊임없이 음식 관련 프로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대부분 미디어에 노출되는 음식들은 상업화 된 제품이다. 상업화 된 음식은 자칫 인간 소외만이 아니라 음식 자체의 소외는 낳는 것이고, 이는 드라마 < 제빵왕 김탁구 > 에서 빗대어 말하고 있는 셈이다. 

SBS < 잘먹고 잘사는법 > 의 '양희은의 시골밥상'이나 KBS < 비타민 > 의 '위대한 밥상'정도 되어야 그 상업적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데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하기 일쑤이다. 결국 '효용성'을 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건강에 좋다는 영양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거나, 그 하위로 '맛'을 강조한다. 대개의 경우 그 음식이 팔봉 선생이 말하는 것처럼 음식을 먹는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는 지는 부차적이다. 또한 음식을 통해 그 음식을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즐겁게 자아 실현을 하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프로슈머의 시대라면 더욱 이러한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시골밥상'을 확장하면 이러한 음식과 요리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지 모른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제빵이 되려면 사회 정의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정의란 무엇인가 > 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사회라고 했다. 여기에서 공동체적 삶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삶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상업화를 부추기는 시스템은 오히려 가족과 공동체적 삶을 해친다고 보았다. 제빵은 하나의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는 시장적 행위를 말한다. 

그 시장적 행위는 비록 사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결국 사회적 혹은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 공동체적 가치는 바로 남들과 건강하게 더불어 사는 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탁구가 말하는 제빵은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하지만 제빵의 과정에서 자신이 남을 생각하는 것만 부각할 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빵을 먹고 싶은지 제빵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반영하는 것은 간과되었다. 빵의 민주주의는 그 결과의 분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빵에 그러한 정신을 부여하는 것은 자칫 오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드라마 < 제빵왕 김탁구 > 에서 빵은 통속극의 전개를 위한 하나의 오브제에 불과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빵이 아니라 떡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빵을 선택한 것은 어느새 빵이 우리 일상생활에 매우 깊숙하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문화로 보이지 않는 감 때문이겠다. 더구나 젊은이들의 눈길을 잡기 위해 새로운 트렌드를 드라마에 적극 반영하는 것은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트렌드의 관점에서 볼 때 이미 빵은 최첨단은 아니다. 오히려 떡이 선두에 나서고 있다. 이전 처럼 단순히 떡집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고급 브랜드화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빵은 단순히 '맛'으로 먹는지 모르지만, 떡은 건강과 기품을 중요시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 떡은 고급스런 선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빵은 그러한 품목에서 제외된 지 오래이다. 이 때문인지 드라마 < 제빵왕 김탁구 > 에서 팔봉선생은 몸에 좋은 빵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떡을 다룬 드라마에서는 충분이 몸에 좋은 떡, 정성과 품격, 전통, 정신을 말할 수 있는 떡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해서 해볼만한 여지가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한류를 이끌려면 한국의 맛을 알리는 독특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드라마가 성공한다고 해도 빵은 궁금증을 덜 일으킨다. 하지만 떡은 이국적 소재로 충분히 호기심을 일으킨만 하다. 영화 < 식객2 > 가 실패했던 것은 반찬으로 먹는 김치를 소재삼았던 측면도 크다. 그것은 메인 디시가 아니다. 그러나 떡은 충분히 메인 디시가 될 수 있다. 적어도 간식거리에서는 말이다. 물론 떡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해야 하는 정의론적 의무감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