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분석

현대사 소재 영화와 왜곡 논쟁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6. 9. 9. 16:08

팩트 왜곡도 문제지만 상업적 국뽕 바람직한가


1995년 뮤지컬 ‘명성왕후’는 대중적인 성공에 힘입어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한국의 대중적 성공만이 아니라 미국의 뮤지컬 시장에까지 진출했으니 그 명성과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 작품의 세계관은 곧 명성왕후의 모든 콘텐츠 스토리를 규정했다.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에게 희생당한 것은 분명 분노할 일이지만, 이 뮤지컬은 명성왕후를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명성왕후의 관점을 합리화 해주었다. 

이 뮤지컬이 강조하는 것은 국뽕 정서이기도 했다. 명성왕후를 가리키는 국모라는 단어가 이를 잘 말해주었다. 이 뒤에 이 작품 때문에 국모라는 단어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명성왕후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 오로지 국모는 명성왕후 혼자였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분노를 유발하는 국가적 정서와 함께 민족적 격정을 유발한다. 이런 가운데 명성왕후가 세도 정치를 다시 부활시키고 망해가는 청나라에 의존하여 세력을 강화하고 일본의 승리를 가져온 청일전쟁 유발의 오류들을 은폐하고, 명성왕후가 행한 조치들이 모두 옳았던 것처럼 만들어주었다. 오로지 명성왕후만이 나라를 생각했고 바르게 대응했다는 정서가 형성되었다. 




일본에 희생당했던 명성왕후는 조선이고 곡 우리라는 국뽕의 정서를 자극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던 것이다. 뮤지컬의 영향을 받은 KBS 드라마 ‘나 가거든’이라는 주제곡은 생을 초월하는 실존적 고민을 담아내며 명성왕후의 심정의 공유를 강력하게 이끌어냈다. 

이런 점은 2016년 영화 ‘덕혜옹주’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났다. 이 영화에서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덕혜옹주가 비밀 학생모임에 나가거나 영친왕의 상해 망명 거사에 참여한 적도 없고, 재일 조선인들 앞에서 미래의 희망을 말하는 연설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역사적 사실과 다른 면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단지 일본에 끌려가 감금당하고 강제 결혼을 해야 했던 덕혜옹주의 삶은 분명 비극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불행을 역사적 서사와 무리하게 연결시켰다. 이렇게 극적으로 만든 것은 국뽕의 정서를 유발해 관객 동원을 이끌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 일제 식민 지배를 받게 만든 지배층, 조선 왕족과 양반 사대부 세력들을 합리화해줄 우려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근본 자료는 일본인 혼마 야스코가 쓴 평전 '덕혜희'였다. 하지만 이 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채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권비영의 책만 100만권 이상이 팔린 바 있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덕혜옹주에게 관심이 갔는가는 바로 이 책의 부끄러운 대중적인 상업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더욱 우려스러웠다. 이 영화는 명확한 선악 구도를 통한 할리우드 오락액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감독 스스로도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참고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한 바가 있었다. 당연히 반공 영화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반공 영화라는 관점은 인민군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에 모아진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오류가 이런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 역사적 근본 사실에 많이 어긋나 있다는데 있었다. 당시 첩보 부대원들의 활약상을 극적인 효과를 위해 뒤섞어버리고 너무 부풀렸던 점도 그렇지만, 인천상륙작전의 희생자들은 철저히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5일 인천 시청 앞에서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비판하는 시위대의 성토가 있었다. 이들은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보듬기보다는 전쟁을 오락 게임을 하듯 편집한 반공영화“이며 “국방부는 미군 폭격으로 입은 주민 피해와 징발된 토지·가옥 등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은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2008년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1950년 9월 10일 미 해병대항공단 제15 항모전단 전폭기가 월미도에 네이팜탄 95발을 투하해 그곳이 폐허가 되고 거주하던 주민 100여 명이 숨졌다. 또한 미군이 점령하면서 나머지 주민들은 대거 쫓겨났다.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고향에서 강제로 쫓겨난 것이다. 그리고 66년 동안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수없이 문제제가 했지만 그들의 땅, 월미도는 국방부에서 다시 인천시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영화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월미도는 전략적 중요도 때문에 주인공들의 활약이 이뤄지는 곳일 뿐이다. 적을 상대로 활극을 벌이는 오락 영화의 공간이다. 일반 주민들은 없고, 인민군들만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폭탄의 투하는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다. 오로지 주인공들만 살아남기를 바라는 기이한 상황이 되고 주민들의 생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으니 오락 상업 영화화의 폐해가 드러난 것이다. 더구나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초반에 해군 첩보부대원이 실시한 영흥도와 덕적도 확보 작전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는 점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는 9월 9일 오전 10시30분, 인천 월미도에서 제66주년 9·15 인천상륙작전 전승 기념식이 다른 해보다 더 크게 열린다. 규모가 커지는 상륙작전 재연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 한다. 좌석도 보통 1700백석에서 2500석으로 늘렸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다. 인천시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많은 행정력을 집중해온 그간의 과정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천시는 월미도 상륙 작전 당시 희생되었던 주민들을 위한 배려를 찾아볼 수는 없다. 전승 기념식에 원주민들이 초청된다는 말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민간인 희생을 외면하는 것일까. 이렇게 민간인 희생 문제를 배제하는 것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신화에 금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5000분의 1이라는 어려운 확률을 성공으로 실현시킨 위대한 작전이라는 점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과 피해에 눈감아 온 것이다. 영화는 이를 더욱 확증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국뽕의 심리가 개입되어 있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했다. 그런 인식과 태도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앞으로 이런 신화화가 지속될수록 더욱 외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영화가 이런 희생과 피해를 담아냈다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해당 영화는 그러하지 못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크게 흥행한 것은 이런 대중적 각인 효과 때문에 매우 불행한 일이 되었다. 

최근 근현대사의 소재 영화들이 실화라는 점을 내세워 마케팅을 강화해 왔지만 역사적 맥락이나 진실은 외면되고 대중적 흥행을 위한 오락성과 극적 재미만이 가미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역사를 제대로 반영했는가는 창작을 위해 얼마든지 유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학자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그것에 대중적 환기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물량 공세의 멀티플렉스 시스템 안에서 일방적인 인식의 강요가 이루어진다면 비판적 논쟁이 얼마나 가능하고, 그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더구나 집권 정치 세력과 지자체조차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업 영화 자본과 쉽게 결탁하여 왜곡과 은폐에 능동적인 상황이니 말이다. 사드 배치가 국민과 시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언제든 우리는 인천상륙작전의 피해 주민이 될 수 있다. 오락 영화처럼 즐길 수 없든 전쟁터 한반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지켜 줄 수 있을까. 그럴 의지가 있을까. 그것이 인터넷 상의 설왕설래만으로 안되는 이유인 것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