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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에는 왜 비정상적인 가족이 많을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0. 12:00

한국드라마에는 왜 비정상적인 가족이 많을까?

-막장드라마, 가족주의

정상과 비정상, 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제는 ‘정상’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참 조심스럽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장애인 방송에 고정 출연한 적이 있는데요, 이때 이 ‘정상’이라는 단어 때문에 혼쭐이 난 적이 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스튜디오를 나오니, 작가가 바로 주의를 주는 겁니다. 문제가 된 발언은 이랬습니다. “정상인과 장애인은 다를 게 없고, 더 나은 점이 많다”라고 했는데요, 언뜻 들으면 장애인을 매우 존중하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이미 장애인은 정상인이 아니란 뜻을 담고 있는데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비정상인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장애인들은,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을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고 부르죠. 물론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관점에서 붙인 호칭이고, 정상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장자(莊子)가 말했듯 천하의 미인이라고 해도, 물고기에게 얼굴을 내밀면, 물고기는 물속 깊이 달아나버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모든 것을 상대적인 관점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즉 일정한 기준에 따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란 것이죠.

정상가족의 모습은?

그렇다면 정상가족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자녀가 있는 가족이 정상일까요? 그렇다면 어머니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은 정상 가족이 아닐 겁니다. 아버지 혼자 키우는 가정도 마찬가지고요. 한 부모 가정도 엄연하게 가족의 한 형태인데, 이런 점 때문에 ‘편모가정’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결손가정’이라는 단어에도 무엇인가 결핍, 부족하다 즉 비정상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적합하지 않죠.

이 글에서 말하는 ‘비정상 가정’은 가족 구성원의 있고 없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눈여겨보려는 것은 불륜, 출생의 비밀과 같이 보통 우리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가족사의 모습이 한국 드라마에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증가하는 걸까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라는 소재와 통속극이 결합하고, 또 그것이 시청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드라마 속의 가족주의

우선, 비정상적인 가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드라마들이 가족을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담고 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해외 언론들은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의 특징으로 가족주의를 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산업화로 가족 해체의 아픔을 겪고 있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족주의는 설득력이 있고, 또 이 때문에 <대장금>과 같은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은 것이죠.

그러나 한국인들이 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에 따라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반드시 빈번하게 등장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족주의가 비정상적인 가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최근에 막장드라마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한국드라마가 지향하는 것은 비정상 가족주의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따뜻한 가족애를 표방한 드라마도 결국에는 비정상적인 가족을 등장시키는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었죠.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드라마는 대개 통속극입니다. 통속극은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전문지식이나 교양의 축적을 필요로 하지 않고, 학력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볼 수 있습니다. 통속의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인데요, 즉 통속극은 한 사회에 널리 통하는 풍속을 다루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국의 통속극이라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풍속을 다루는 게 될 것이고, 풍속은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 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 따위를 이르는 말이 되겠죠. 따라서 사회의 과거와 현재는 풍속에 담겨 있고, 그걸 반영하는 통속극은 한 사회의 사람들이 지닌 인식과 일상생활 문화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통속극에는 한 사회의 특징이 잘 나타나게 돼 있죠.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들이 많은 한국드라마를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또 대개 이해하지 못하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되곤 합니다. 한국인들의 풍속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보다 가족을 더 우선하는 가족중심주의입니다. 특히 드라마를 즐겨보는 여성들의 삶은 개인의 삶보다 가족관계 속에서 삶의 정체성이 확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관점에서는 이런 한국인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가족중심 드라마는 가족 집착드라마로 보이게 됩니다. 이에 통속가족드라마는 해외수출보다는 내수용으로 만들어지고, 더욱 광고 수입을 위해 극단적인 가족드라마로 시청률 올리기에 나서기도 합니다.

사실 TV 통속극의 지상과제는 시청률입니다. 시청률이 올라야, 그 드라마에 광고가 많이 들어오고, 그래야 또 광고 단가가 높아져서 방송국의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쉽게 시청률을 높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극적인 내용입니다. 물론 무조건 자극적인 장면에 시청자들이 눈길을 주는 건 또 아닙니다. 그들의 삶, 혹은 관심 대상을 소재로 삼아야 하는데, 그것이 또 가족인 겁니다. 평범하게 가족을 다루면, 시선을 주지 않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자극적인 모습의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조강지처클럽>속의 집안의 온 남자들은 바람을 피웁니다. <아내의 유혹>은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 아내를 얻고 다시 조강지처가 남편을 빼앗아오는 복수극입니다. <에덴의 동쪽>은 아이가 뒤바뀌어 운명이 달라지는 출생의 비밀이고요, 또한 <너는 내 운명>은 불치병이나 교통사고로 가족 구성원이 시시때때로 죽어 나갑니다. 또한 동생의 남자친구를 빼앗아 오거나 한 남자를 두고 자매가 경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불륜이 등장하지 않는 적이 별로 없고, 이혼도 너무 쉽게 이뤄집니다. 신분상승을 위해 배우자나 부모를 부정하거나 이용하기도 하고, 시어머니는 악독하게 등장해서 며느리를 괴롭히는 존재로 굳어지기도 합니다. 막장 드라마일수록 가족 구성원 안에 악인과 선인을 이분법적으로 만들어 버리곤 하죠.

비정상적인 가족에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 것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그것은 피해의식일 수도 있고, 또 현실에 바탕을 둔 불안의식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제약당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의 상처가 사회적인 풍속이 됐고요, 또 가족의 붕괴는 삶의 위기라는 불안의식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이를 겨냥한 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그런 상처를 크게 부각시키려다보니 비정상적인 가족관계가 극대화되는 지경에 이른 겁니다.

현실을 돌아봐도, 가족이 항상 편안함이나 행복감만 주는 건 아닙니다. 물론 갈등과 다툼이 있죠. 가족은 아이언 케이지와 같습니다. 새장은 외부의 위협에서 새를 보호해주지만, 자유를 제약하듯이, 개인에게 가족은 편안함을 주지만, 때론 그것이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죠. 드라마에서도 가족의 모습을 무조건 아름답게만 그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가족도 그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가족의 모습은 다양하게 존재하게 됩니다. 비정상적인 가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요, 문제는 드라마 속에서 그것이 매우 극단적으로 그려지거나 또 눈요기만 하다 끝난다는 점입니다. 일부 가족 구성원의 관점에서만 보고, 왜곡된 가족관계를 그리는 것도 한 문제가 되겠죠.

정상을 정의하기 어려운 시기에, 다양한 관점을 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