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디’는 가능한가? | ||||||||||||||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캠핑 대디 신드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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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는 ‘아빠는 왜?’라는 시의 전문이다. 2010년 9월 26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오늘을 즐겨라>에 소개된 이 시는 게스트들을 박장대소하게 했지만 정작 방송 당시에는 크게 화제를 모으지도 못했다. 그러나 뒤늦게 이 시가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내리며 화제를 모았다. 그것은 기분 좋은 화제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빠들이 자괴감에 빠져 이 시를 돌려 읽었다. 어린이의 눈에 비찬 아빠의 모습이며 대한민국 아빠들의 자화상이다. KBS <남자의 자격>은 중년남자들의 정체성을 묻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물어야 할 것은 아빠의 정체성이었다. IMF관리체제 이후 가부장적인 남성상이 부각되었지만, 그 뒤 줄곧 모성과 어미가 부각되었다. 이른바 여성의 지배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고 상대적으로 아빠들은 표류했다. 해나 로진은 <남자의 종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남자들, 그중에서도 젊은 남자들은 과도기에 놓였다. 더 이상은 아버지들처럼 살지 못한다. 대화도 못할 여자와 결혼하여 매일 긴 시간 노동한 후 집에 돌아와 무심하게 자식들의 머리를 쓰다듬던 시절은 지났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아빠의 귀환’이 의미하는 것 이제 남성들은 ‘대체 정자’를 통해 태아수정의 역할도 박탈당하여 이른바 남자라는 존재 자체의 소멸을 예견하는 전문가도 나왔다. 근래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모처럼 아빠의 정체성이 부각되었고 많은 매체에서는 이러한 아빠의 귀환을 사회구조적이 측면과 연결시키려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7번방의 선물>에 등장한 아빠는 지적 장애인이었고, 결국 자기 목숨을 버리며 딸을 지키려 했다. 적과 괴물을 물리치는 슈퍼맨이나 람보 같은 가부장시대의 영웅적 아빠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7번방의 아빠>는 담배도 모르고 술도 안 먹으며 친구도 없다. 또한 몇 십 만원의 월급일지라도 항상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온다. 그리고 오로지 딸만 바라보는 ‘딸바보’다. 물론 남자아이를 선호하는 남아 선호적 차별은 아예 관념도 없다. 이른바 친구 같은 아빠 그리고 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희생적 보호자, 수호 기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아빠들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친구 같은 아빠 프렌디(friend+dad)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은 것일까.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아빠 어디가>에 등장하는 아빠는 캠핑 가는 아빠다. 이른바 프렌디를 넘어 플레디(play+dad)에 맞는 이미지다. 그런데 캠핑은 중간 절충점을 제공해주므로 남성들에게 과히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남성들이 혼자 캠핑을 가는 것은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적어도 아이와 함께 떠나는 캠핑은 호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뇌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의 뇌 활동 차이에 따른 육아와 가사 역할 분담론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하지만 그동안 아빠의 역할과 정체성이 한국에서 친구와 같은 대등한 존재로 간주된 것은 그렇게 오래지 않다. 사회에서 ‘아빠 학교’가 종종 강좌명으로 오르내리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가 멀뿐이다. 이 때문에 고민이 깊어진 아빠들은 <아빠 어디가>를 필수적으로 챙겨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흉내 낸다고 되는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프레디’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빠 어디가’ …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이를 상품화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무엇보다 하나의 ‘프렌디’ 캠핑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캠핑 대디 신드롬’이다. 이제 피서 시즌이 다가오면서 더욱 이런 행태는 증가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젊은 아빠들은 이전의 아빠와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부지런히 차를 구입하고 캠핑장비들을 수 십 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치르며 구비하고 있다. 관련 업체들은 환호성을 지루고 있다. 이러한 장비를 갖추고 캠핑을 가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에서야 항상 재미와 유희 그리고 감동까지 선사해준다. 하지만, 아무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편집의 마력에서 나오는 미디어 효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 즉 <아빠 어디가>는 어느새 수많은 아빠들에게 강박심리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가치관 변화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수많은 임상교육심리학자들은 각 각의 아빠 개인들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어야 함을 강조하기만 한다. 얼마 전 한 시민 단체의 국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친구 같은 아빠를 지향하는 곳은 한국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실천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3국 가운데 한국의 아빠들이 꼴찌였다. 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을까. 이 조사의 분석대로 한국 아빠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 인 때문일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개인의 판단이나 습성에 원인을 돌리는 것도 오류일 수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과 시장경제는 무한 경쟁 속에서 압축 성장했다. 남성들은 일터에서 중노동에 시달렸고, 여성들은 가정에서 가사노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런 경제모델은 이제 낡았고,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관은 남녀성은 물론 엄마와 아버지의 역할 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변화에 부응할만한 문화적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한국의 노동시간은 연 2090시간이며, 이는 OECD 2위 수준이다. 미국(1704시간)·일본(1728시간)·독일(1406시간)보다 매우 긴 시간이다. 더구나 일과 시간과 비일과 시간의 구분이 없다. 출세를 꿈꾼다면 더욱 강도는 세어진다. 남자에게 아직 요구되는 것은 가족에 대한 생계책임이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하위권이다. 더구나 한국의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자는 정규직 시간당 임금의 53%에 불과하다. 그나마 좋은 일자리의 정규직이거나 ‘아빠 어디가’처럼 스타라면 자기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 어디가’에 왜 스타들이나 연예인들만 나오는지 알 수 있겠다. 육아를 위해, 아니 아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 휴가를 신청할 때 받아주는 직장은 얼마나 될 것인가. 오히려 더 강도 높은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일반 노동자 아빠들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텔레비전 흉내라도 내야 한다. 힘들게 번 돈이거나 정규직 보다 적은 임금으로 번 돈으로 캠핑 장비를 사야겠지만, 슬프게도 그것이 만능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삼포세대처럼 아예 결혼은 물론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아빠 어디가>는 하나의 환타지이자 로망인지 모른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아이와 캠핑 가는 것이 꿈이 된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삼포세대의 현실이요, <아빠 어디가>는 로망이다.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프렌디’라는 아빠의 현실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구다. 그것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이 신파적으로 부풀린 아빠 이미지와 부합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