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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을 통해 어떤 위안을 받았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0. 9. 27. 22:52

트롯과 문화심리

-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롯은 트롯이 아니다. 이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느낌이 든다. 르네 마그리트가 자신의 그림에 적은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모방한 것만은 아니다. 원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트롯과는 많이 달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트롯이 아님에도 이해의 편의를 위해 트롯이라고 이름한다.

사람들이 트롯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는지 생각하려면 무엇보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트롯이 유행가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트롯은 전통가요가 아닌 대중가요였고 음악 소비층이 집단을 이루는 시기일뿐더러 유성기 등 대중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트롯은 상품이며 상품은 승리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전통 민요나 노동요와 다른 점이다. 선택받기 위해 분투하는 음악은 계속 변화하는 음악 선호에 부응해야 한다. 그만큼 트롯은 많이 변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상황이나 세대 정서에 맞게 트롯이 변화를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시대에 따라 사람들은 변화하는 트롯에서 위안을 받았다.

 

일단 음악 문화의 흐름을 보면, 초기에는 전통 창법은 미국의 폭스트롯 춤곡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당시 문화 유행을 주도했던 일본의 음계를 받아들인다. 이 일부 음계 때문에 일제 잔재 시비에 시달리지만, 그것은 유행에 따른 융합 현상일 뿐이며 일제 시대 엔카 류의 노래를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시대별로 대중이 원한 음악적 요구는 달랐다. 1928년에 '황성옛터'가 대중가요 1호라고 불리는데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1935목포의 눈물은 겉으로는 개인의 이별과 슬픔을 담은 듯하지만 나라 없는 이들의 고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겪어야만 과정에서도 일반 대중의 희노애락을 담아냈다. 60-70년대는 특히 이촌향도의 산업화 시기 풍경에 지역성과 토속성이 결합 되어 향수를 달래고 팍팍한 삶이 고달픈 서민의 애환을 대변했다. 80년대 고도 성장기를 반영하듯 도시적 감성이 개인화되는 생활 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부상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이후에는 밝고 경쾌한 젊은 감각의 트롯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이상 한의 정서를 강하게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고 발랄한 곡들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트롯이 엔카류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면 이는 트롯에 관심이 없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융합하면서 트렌디한 요소를 결합시켰다. 예컨대 탱고, 지루박, 맘보, 스윙, 재즈, 발라드, EDM 등 해외의 다양한 음악들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침체기와 부흥기가 교차했다.

 

이제는 트롯이 위안을 주는 기본 특징을 보자. 트롯이 팬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격하게 감정을 호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목소리를 떨기도 한다. 뽕끼라 칭해지는 청승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창법은 이런 감정의 공유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너무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격조를 찾는 이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너무 직접 감정 표현을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더욱 그러하다. 감정에 호소하거나 떨림의 창법은 바로 자신의 삶의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트롯이 좋아진다는 이유가 들어맞는다. 살아온 세월이 많을수록 상처와 회환이 많이 쌓이게 되고 이를 트롯으로 풀고 위로받고자 했다.

 

트롯은 21세기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접근성이 용이하다. 쉽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대리 충족한다. 무엇보다 같이 어울려 부르기도 쉽다. 서로의 마음을 감정이입하고 공명을 일으키는데 복잡할 이유는 없다. 다른 노래들과 달리 오랜 기간 음악적 트레이닝에 받지 않아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박자에 쉽게 느낄 수 있는 리듬감이 필수 요소인데다가 쉬운 가사 반복적 멜로디는 대중성을 갖기에 충분했다. 즉 트롯은 예술인 척하지 않았다.

 

또한, 듣는 트롯에서 보는 트롯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스탠딩 자세에서 가창력에 의존했고, 표정은 단순했다. 하지만 가수의 캐릭터는 좀 더 대중에게 친근해졌다. 외모는 더 귀엽거나 섹시해졌고 안무도 더 많은 동작을 접목시켜 나갔다. 트롯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화한 것이다.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처럼 대중과 교감과 상호 리액션을 많이 할수록 더욱 호평받았다. 이 때문에 인간적인 면모나 태도를 보이는 이들일수록 장수했고 각종 예능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류의 테크니션을 멋지게 날린 송가인이 젊은 나이임에도 진중한 트롯과 트렌디한 트롯을 오가면서도 예능에서도 각광을 받는 이유다.

 

트롯이 다시금 주목받는 데는 아이돌 음악의 편중성과 복잡성 그리고 그에 따른 소외된 이들의 응집이라는 원인도 있다. 요즘 아이들 음악들은 혼자 노래를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파트별로 멤버들이 나눠서 부르고 따로 피처링을 곁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리학적으로는 개인의 통제감 상실 상태로 접어들게 했다. 하지만 트롯은 스스로 언제든지 가창까지 가능하다. 복잡성과 분할성이 강할수록 개인의 효능감은 떨어지고 만다. 사회적으로 무력감에 시달리게 하는 무한 경쟁 시대에 온전히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힐링이다.

 

최근 젊은 세대까지 트롯에 주목하는 것은 감정의 솔직함과 개방성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 그리고 90년대 생들은 자신의 느낌과 취향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공유하는 것을 원한다. 다만, 예전의 트롯 장르처럼 한이나 고통에 적신 분위기의 노래를 원하지 않는다. 김연자는 북한이나 일본에서도 인기 있던 가수지만 EDM 트롯인 아모르 파티로 아이돌들조차 흥겹게 따라부르는 노래의 주인공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젊은 세대에게 고통과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를 웃프게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려 한다. 이제 트롯이 주로 재미와 웃음을 추구하는 배경은 단지 유희 차원이 아닌 것이다. 상황도 제목, 가사도 이런 정서가 있어 요즘 세대 불문 인기곡인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이나 영탁의 니가 거기서 왜 나와등이 가능하게 했다. 비록 신나고 재밌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지만, 시대의 정서와 개인들의 애환이 절묘하게 단순해 보이면서도 재미적 승화를 통해 삶의 새로운 동력을 얻어가게 한다.

과거부터 트롯은 트롯이 아니다. 앞으로도 마차가지다. 솔직, 직접, 개방성의 코드는 오히려 21세기 디지털 코드에 맞기 때문에 미래에도 더욱 트롯은 위안받을 사람을 위한 문화적 변신을 해나갈 것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위클리에 실린 글입니다. 

 

글/김헌식(박사, 평론가, 대구대학교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