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치 냉소주의 부추기는 드라마 ´대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09

<김헌식 칼럼>정치 냉소주의 부추기는 드라마 ´대물´

 2010.10.15 09:00

 




[김헌식 문화평론가]찰스 린드블럼(Charles Lindblom)은 "정치 과정은 진흙 사이의 통나무 굴리기(Muddling Through)"라고 말한 바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이익을 조정하고 명분과 실제 사이의 간격을 줄여가는 것이 정치과정이자 정책 형성이다. 이러한 주장은 점증주의적 태도이다. 때로는 지난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결국 정치과정과 정책의 효과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또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근시안적이거나 감정적으로만 움직일 수는 없다. 때로는 당장에 해가 되는 일들이 장기적으로는 큰 이로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으로 정치과정에 접근할때 오히려 새로운 악으로 탄생할 수 있다. 

사실상 드라마 < 대물 > 은 이러한 현실적 정책 혹은 정치적 과정들을 무시하고, 정치 불신을 조장한다. 기존의 정치와 국정운영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무엇보다 온정주의적인 태도가 만능인 것으로 몰아간다. 이는 대중정서상 당연히 이해하고도 남는 것이다. 대중적 정서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강자와 약자,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구분해내고 주인공을 모두 선한 쪽에 배치시키면서 감정이입과 동일시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시청률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 < 대물 > 은 그런 점에서는 성공했다. 

드라마 < 대물 > 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복잡한 구조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해결방법을 착실하게 모색해가는 '머들링(Muddling)'의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 인물들이다. 하도야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욕한 국회의원을 혼내주기 위해서 검사가 된다. 만화 같은 설정이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 옥탑방 고양이 > 에서 실컷 놀고도 사법시험에 붙는 주인공 - 김래원에게 쏟아질만한 욕이 권상우 - 하도야에게도 범람할만했다. 

하도야-권상우를 둘러싼 대중코드는 바로 남들앞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자의식의 자기만족적 충족심리다. 하도야 검사는 머들링의 과정을 생각하지 않으며 모든 사안들은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면서 타개해 나간다. 어디 검사가 사적인 복수를 할만큼 녹록한 현실일까 의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은 여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다. 서혜림(고현정)이 아나운서 직을 지원하는 것도 방송구조보다는 드러내고 주목받는데 있다. 하도야와 마찬가지이며, 남편의 죽음에 대응하는 그의 행동들에는 결국 머들링의 과정은 생략된다. 

이러한 자의식적 충족이 앞서는 심리가 타당화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슬픈 자신의 감정이 우선이다. 그러한 감정과 상황을 통제하면서 머들링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정책가 내지 정치인으로 자질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무시하거나 능력이 없는 이들일수록 절대 권력을 원한다. 마지 기게스의 반지를 원하는 이들과 같다. 

절대권력을 쥐고 있으면 자신의 마음대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공중파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독재자같은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한방에 멋진 정치를 이루려 한다. 속도감 있으면서 단순명쾌한 드라마의 전개는 답답한 현실정치를 질타하면서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혜림이나 하도야는 현실정치에서는 무능한 정치를 보이고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며 오히려 정치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 드라마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치인들이 어떻게 현실정치에서 힘을 잃어가는가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은 없다. 오로지 주인공에게만 해당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시청자 자신이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직장인이자 전업주부였던 여주인공이 대통령이 되는 내용이니 이러한 구도는 더욱 강하게 시청자의 심리를 파고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소구는 결국 기존의 정치인들을 모두 똑같은 존재로 묶어버리고 만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다. 정치인은 모두 다 같다는, 그래서 누군가 단번에 들어가 뒤집어 놓아야 한다는 설정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다 똑같지 않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훌륭한 정치를 일구어내고 일정한 성과들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많다. 더구나 개인의 악한 본성이나 행실 때문이 아니라 제도의 허점이나 법적 모순, 정치적 음모와 악용으로 좋은 정치인들이 떨거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리처드 뉴스타트는 대통령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이룰 수 있을 듯 여기는 심리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강대한 나라를 대통령 혼자 만들겠다는 것은 쇼맨십이나 소아병적 영웅주의에 다름 아니다. 현실에서 서혜림은 새로운 악의 탄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다스베이더의 탄생과 같다. 무조건적인 정치 비판은 당장에는 시원하지만, 깊은 허탈과 소외를 낳는다. 드라마는 인기가 높아도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은 양심적 정치세력과 정치인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