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장애인, 뮤지컬 '빨래'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4. 25. 02:26

장애인을 위해 빨래할 정치인이 필요하다

 

장애인, 뮤지컬 '빨래'




2005년 초연 이후 2008년 다시 가다듬어 선보이고 있는 화제의 뮤지컬 ‘빨래’의 가장 명장면은 1막에 있다. 1막의 끝자락에서 주인집 할머니의 혼잣말은 소리 없이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다. 그때서야 왜 40년 동안 기저귀가 그 집 빨랫줄에 걸려있었는지 알게 된다.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공익근무요원이 주인 할머니 집에 찾아와 정둘이씨를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사람은 찾을 수가 없는데, 대신 그는 방문 하나가 잠겨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을 부르고 문을 두드려도 사람은 없다. 정둘이라는 사람을 찾는 이유는 그녀가 장애인이고 장애인 재등록 기간이라 다시 갱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익근무요원이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야 재등록 인정이 되는 것이다.

공익근무요원은 잠긴 방에 장애인 정둘이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할머니를 불러내어 기어코 그 문을 열게 만든다. 그런데 방문을 열자 방안의 냄새가 코를 찌르자 공익근무요원은 비명을 질러댄다. 그러자 피눈물도 없는 옹고집 구두쇠 같던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

“너는 냄새가 없는 줄아.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다 냄새를 풍기게 마련이야. 살아있는 증거지, 이 애도 살아 있으니 냄새를 풍기는 거고. 40년 동안 나는 이 애의 기저귀 빨래를 했어. 냄새나는 빨래를 계속하면서도 냄새가 나는 것이 좋아. 결국 그 애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므로,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라.”

할머니는 40년 동안 절단장애인으로 운신하지 못하는 딸의 기저귀를 빨아왔던 것이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뮤지컬 ‘빨래’에는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소리만 몇 번 나올 뿐 할머니의 대사나 주변부 인물들의 행동으로만 그녀를 짐작하게 한다. 똥 기저귀를 빨아주며 지켜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딸은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장애인 관련 드라마와 영화가 많아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각 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인 전제덕을 모델로 삼은 드라마가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방영될 예정이다.

2부작으로 제작되는 ‘하모니카맨’은 더구나 일종의 도네이션 드라마다. 출연자들이 출연료를 다 내놓기 때문에 노 개런티로 출연하는 것인데 내놓은 돈은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드라마 <누구세요?>에는 흉추장애인 지숙(이민정)이 등장한다. 명랑한 말괄량이다. 드라마 <온에어>에는 등장인물들이 만드는 드라마에 지적장애인이 등장할 예정이고,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는 개그맨 정준하가 지적 장애인으로 출연한다. 또한 이미 영화 ‘바보’와 ‘대한, 민국씨’가 개봉했다.

하지만 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장애인이 등장한다는 사실에만 주목한다. 뮤지컬 ‘빨래’에서 주인집 할머니와 같은 존재가 있음을 주목하는 것을 목도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많은 작품들에서도 장애인에게 주목할 뿐 장애인 옆에 버티고 서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옆에 있는 이를 개인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사회, 국가정책으로 보면 반드시 사람을 떠나 장애인 정책일수도 있고, 장애인에 대한 제도나 시스템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작품들의 치명적인 한계는 대개 장애인이 개인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장애인은 항상 방에 갇혀 있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스릴러물에서는 외향적인 모습 때문에 사람들을 방심 시켜놓는 가공할 살인자와 같은 캐릭터로 나오거나, 휴먼 스토리 시네마에서도 장애인은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장애인들끼리 모이지도 않는다.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 사회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더욱 배제된다. 자신의 권리를 능동적으로 찾는 장애인의 모습은 방송교양물이나 다큐에서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시사뉴스에나 조금 등장하고 그것도 흔하지 않다. 감동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다루어진다.

2008총선장애인연대에서는 제18대 총선에서 각 당의 비례대표 1번을 장애인으로 공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에는 2석 이상을 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정치세력화는 왜 필요한가. 뮤지컬 ‘빨래’에서는 항상 든든한 할머니가 있었지만, 개인적인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다. 많은 작품들이 장애인의 바라보는 관점이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듯 일반적인 시선도 그렇다.

장애인을 든든히 지켜주는 것은 법적, 제도적, 국가적 시스템 면에서 더 중요한 점이 크다. 이는 단순히 장애인 단체 차원의 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때 더욱 그러하며,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정치적인 중요성이 부각된다. 대한민국은 의회의 법안 통과로 대부분의 중요 정책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장애인 정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장애인의 정치 세력화에 못마땅해 하는 시선이 있다. 이익 단체화 된다는 점을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익단체가 나쁜 것이 아니며 권리주장을 하는 단체는 이익단체이니, 장애인의 움직임이라고 달리 볼 필요는 없다. 앞의 시각도 결국에는 대중문화 속에 갇힌 장애인들의 모습과 같다.

장애인이 항상 파편화 개인화되어 있고 직업 없이 방에나 있으면서 도움만을 받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로 그려지고, 순수하고 착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만 하다가 사라져가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그들 말이다.

다만, 장애인이 꼭 장애인을 잘 대변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 '빨래'의 할머니처럼 40년 동안 장애인의 기저귀를 빨아온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해 열심히 능력을 발휘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빨래를 해줄, 빨래를 할 사람, 빨래를 말려줄 바람이 필요하다.

슬픔도 억울함도

같이 녹여서 빠는 거야.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다보면 힘이 생기지...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 짜서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가 말려 줄게요.

-뮤지컬 ‘빨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