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국가 만들기

유럽의 박찬욱 모델은 미국에서 통할까?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3. 2. 6. 07:56

                                                                                                                   (김헌식 박사, 평론가)

 

유효수요이론의 창시자인 경제학자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는 그의 저서 고용, 이자 돈에 관한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에서 주식 시장을 미인 선발 대회로 비유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성과 위신에 부합할만한 사람을 미인으로 꼽는다. 물론 진짜 미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케인즈는 주식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본 것이다. 영화제에서도 이런 미인 선발 대회 효과가 일어난다

 

작품이 좋은 것과 상을 줄 기준은 다른 사례는 흔하다. 관객의 평가는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니 아무리 예술성을 중시하는 국제영화제라도 요즘은 대중적 관점 즉 관객의 반응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2023 골든 글로브와 크리틱스초이스에서 헤어질 결심의 이름이 없었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데 앞으로 아카데미는 어떨까. 아카데미에는 더 많은 후보 분야가 있으니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영화 헤어질 결심은 외면할 수 없는 포인트를 몇 가지 가지고 있다.

 

몇 가지 포인트를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금기 위반이다. 박찬욱 감독의 단골 메뉴다. 이번에는 수사관과 용의자 금기다. 그러면 안 되는데 수사관과 용의자가 사랑에 빠진다. 수사관은 단순히 사랑에 빠지지 않고 증거 인멸까지 도와준다. 원칙주의자가 이런 지경에 이른다. 감시를 더욱 심하게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본성을 알게 되었다는 나름의 인식론적 화두에 작지 않은 지적 쾌감을 줄 수 있다.

 

디아스포라 다문화 코드도 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설정도 있다. 둘은 중국인과 한국인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스스로는 서해바다 만큼 그 차이를 안다. 차이를 안다면 디아스포라 문제도 분명하다. 이 장벽을 넘고 있는 두 사람이다. 남다른 비애를 자아내는 설정은 다문화 남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여주인공 송서래(탕웨이)는 그냥 단순히 중국인이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손녀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비참하게 대부분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남다른 감회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솟아날 수 있다. 품어줘야 할 조국은 없이 이용만 당하는 그녀에게 누가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 싶은 사회학적 범죄학 관점이 부활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서래는 비극을 스스로 맞는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남자 주인공은 한없이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그녀의 이름을 미친 듯이 헤맨다. 얼마나 가슴이 저리는 장면인가.

 

그렇다면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일반 관객들이 원하는 결말은 두 사람의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많은 장벽과 차별을 딛고 현실의 모순부각보다는 이상적 결과를 객석에서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그러한 비극적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 금기를 위반해서라도 진정한 행복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열패감에 평생을 시달리며 산다. 이런 와중에 애써 현실 장벽에 좌절하며 비극적 결말을 맞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자기 돈 내고 극장 의자에 앉을 관객의 심정은 어떨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금기 위반의 연애 로맨스물 백인 그들에게 하나의 다양한 해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상을 줘야 한다면 평가 기준은 달라질 듯싶다. 다른 유수의 작품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상은 시상을 하는 이들의 체면과 명분을 살펴줘야 한다. 반독재, 인권 투쟁, 반전 평화, 소수자 문제, 적어도 환경 이슈라도 심사위원들의 손에 들려줘야 한다. 그동안 잘 못 알고 있거나 잘 알려지지 않던 역사적 편견이나 왜곡 문제를 부각해야 한다. 적어도 파친코와 같이 일제강점기 조선 디아스포라의 새로운 역사적 충격이라도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중국인과 한국인조차 잘 구분을 하지 못한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구분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 매우 꼼꼼한 세계관의 형상화가 당장에 통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들의 덩치는 크다.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덩치가 작은 우리도 그렇게 쉽게 해외 작품에 상을 주지 않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본다면 충분히 어떤 방향성이 필요한지 알 수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전략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진행되어왔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프렌즈십을 구사하는 방식이 비단 헤어질 결심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유럽국제영화제 중심으로 로드맵을 짜왔던 우리 영화계에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OTT 등 글로벌 다매체 플랫폼 시대에 어쩌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헤어질 결심은 여기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