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나라 이정은의 문화 코드.
글/김헌식(정보콘텐츠학 박사, 중원대학교 특임교수, 평론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를 본다면 그 배경을 워맨스(Womance)의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워맨스’는 여성(Woman)과 로맨스(Romance)를 합친 말인데 창작 콘텐츠에서 여성 사이의 진한 우정과 유대감, 나아가 애정 어린 관계를 가리킨다. 이런 설정은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스토리와 차이점을 갖는다. 최근 대표적인 작품으로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와 ‘굿파트너’가 있다.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독특하게 여성 캐릭터의 케미를 보여준다. 취준생 이미진(정은지)은 어느 날 갑자기 노년의 여성으로 바뀌는데 알고 보니 오래전 실종된 이모 임순(이정은)이었다. 낮에는 노년의 임순, 밤에는 젊은 이미진으로 살아가면서 이미진은 임순에게 깊은 유대감과 애정을 더욱 갖게 된다. 이미진은 임순은 물론 자신을 위해 알 수 없었던 과거의 아픈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려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진력한다. 두 명의 사람이 한 몸에 동거하고 있는 상황은 워맨스의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위해 주인공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면서 타인도 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개인과 타인,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드라마 ‘굿파트너’는 일정하게 미드의 공식을 따르는 워맨스의 특징을 갖고 있다. 주요 캐릭터로 신입과 백전노장의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갈등을 빚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묘하게 둘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신입 변호사(남지현)는 자신만의 원칙과 나름의 소신을 갖고, 로펌에 뛰어들지만, 번번이 노련한 선배 변호사(장나라)에게 냉소적으로 지적을 당한다. 이상과 현실의 대결인데 결국 대체로 신입이 무력해지거나 좌절한다. 싫은데도 현실의 상황은 백전노장 선배의 견해나 예측대로 되어 간다. 이 가운데 상처를 받기도 하는 신임 변호사는 나름 성장해 가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 갖는 애정이다. 예컨대 신임 변호사는 선배가 이혼당할 처지에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을 쓰게 되고 유대감이 강화된다. 남들의 이혼 사례를 잘 다루지만, 자신의 이혼 위기는 위태로워 보인다. 한편, 선배 변호사는 자신의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매몰차게 대하면서도 애정과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과연 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에 여성 서사가 대중문화의 트렌드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여기에 더해 ‘워맨스’는 몰입을 더 할 수 있는 이야기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이전 드라마와 확실히 다른 결을 갖는다. 남성 중심의 드라마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고 말았다. 더군다나 여성들은 삼각관계 구도에서 서로 미워하고 혐오하는 관계로 소모되었다. 악녀의 패악질이 극 가운데에서 재미를 강화하는 예가 대표적이기도 하다. 한 남자를 두고 서로 쟁취하기 위해 음모와 모략을 하는 두 여성의 모습은 시청률과 관계없이 비호감이기도 했다. 이럴 때 더는 OTT에서 찾을 이유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러한 드라마의 설정은 신화화의 모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 같은 남성 구원 서사나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능력이 있거나 신분이 우월한 멋있는 남성이 여성을 구원한다는 클리셰 같은 서사의 설정은 이제 공감도 이해도 얻을 수 없는 사회 문화적 상황이 되었다. 스스로 구원하는 여성 캐릭터가 더 설득력을 얻게 되고 남성 주인공이 이에 공조하며 이야기가 전개될 때 공감이 더 커졌다. 오히려 여성이 남성의 상처와 고통을 해방하거나 치유해가며 로맨스를 일궈가기도 한다. 더구나 이제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구원하는 서사보다는 상호 구원 서사가 더 선호되었다.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공존 공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쫀득한 케미를 일으키면서 몰입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에서 여성 투톱 주인공이 케미를 만들어 가고 남성 주인공은 여기에 보조를 맞춰주거나 워맨스를 위한 극적 설정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여성들끼리 싸우거나 대결을 벌이지 않고 공동의 문제를 위해 해결하는 관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제에서 한정된 남성 중심의 자원 배분을 위해 투쟁을 벌이던 것에서 벗어나 파이를 확장 시키는 것이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중요해졌다.
남성과 여성의 대결을 지나 이제 여성과 여성의 갈등과 협력이 중요해진 고용 환경이기도 하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졌다는 말도 따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치킨게임’(chicken game)이 아닌 ‘논 제로섬’(Non-zero-sum)이나 ‘윈-윈 게임’(Win-Win Game)으로 가야 할 사회구조에 있기도 하다.
어쩌면 워맨스가 여성들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남성과 여성의 로맨스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점을 드라마가 어필하고 있다. 드라마가 어필하려는 메시지는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 비록 워맨스 실현이 힘들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 콘텐츠가 존재하는 이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