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헌식(중원대학교 사회문화 대학 특임 교수, 정보콘텐츠학박사, 평론가)
국내외 영화 가운데 올림픽을 다른 영화들은 각각 특징이 있는데, 해외 작품과 우리 영화의 결이 다른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일단 영미 영화들은 인종차별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영국과 미국이 합작해 만든 1981년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는 100년 전인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그리스의 전자음악 작곡가 반제리스(Vangelis, 1943~2022)가 작곡한 주제음악이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데, 그 안에는 인종차별에 관한 주제 의식도 분명하다. 1919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해럴드는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왔는데, 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해 천대와 멸시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 즉 유대인이 지적인 면만이 아니라 육상에서도 뛰어나다는 점을 알리고자 한다. 이를 위해 코치를 기용하는데, 케임브리지 대학 측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 코치가 영국 국적이기는 하지만 아랍계열의 혼혈인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이런 상황을 딛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다.
2016년 ‘레이스’(Race)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실화를 형상화했는데, 주인공은 영국이 아닌 미국 육상 선수다. 역시 인종차별 문제를 다뤘고, 미국의 특성상 인종차별의 주인공은 역시 흑인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4개의 메달을 목에 건 제시 오언스의 베를린 올림픽 참가 과정을 중심에 둔다. 시대적 배경이 1936년이니 백인 위주의 육상경기 풍토에서 차별받는 주인공의 모습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제시 오언스는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백미는 그 이후의 상황에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 성격과 이에 대한 참가 여부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나치가 집권하고 있었고, 그들은 베를린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가 참여를 꺼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치는 유대인을 대놓고 무시, 차별은 물론 격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들과 단체에서는 제시 오언스에게 참여 거부를 요청한다. 흑인으로서 올림픽에서 활약할 기회를 가까스로 잡았는데, 인종차별 문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서 주인공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에 이어 흑인에 이르는 인종 문제는 이렇게 올림픽을 다룬 명작 영화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영화들은 어떨까? 대체로 비인기 종목을 다루는 특징이 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경기 종목의 선수들이 설움을 딛고 마침내 눈부신 성과를 얻는 내용을 연상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영화는 ‘우생순’일 것이다. 2008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은 아테네 올림픽 당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에서 배우 김정은의 배역 '혜경'의 등 번호 13번은 임오경 선수의 실제 번호이기도 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의 성과가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은 없었다. 핸드볼 실업팀은 다섯 개에 불과했다. 그러니 젊은 선수들이 없었고, 모두 나이 많은 역전 노장의 아줌마들이 뛰어야 했다. 그들은 생계도 원활하지 않았다. 채소 가게에서 임시 판매원으로 있거나 식당일을 돕고 심지어 빚 때문에 쫓겨 다니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임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희망을 넘어 감동까지 만들어낸다.
결은 좀 다르지만, 동계올림픽의 스키점프를 다룬 ‘국가대표’도 비인기 종목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희망을 찾는다. 역시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당시 강칠구(김지석)와 최흥철(김동욱)은 실제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의 이름까지 사용했다. 주인공들도 술집 종업원, 입양아, 장애인 등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이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출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을 주었다. 제대로 된 훈련장 하나 없이 날 땅에서 손수레 등을 이용해 올림픽 경기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그들도 우생순처럼 그들이 당장에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아니지만 그 참가 준비와 훈련, 경기 과정에서 큰 울림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선수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주목받았다.
이런 모습은 실제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여전히 부각이 되었다. 바로 안세영 선수의 폭로 때문이었다.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그는 주로 체계적인 선수 관리가 되지 않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또한, 메달 가능성이 큰 복식 중심으로 훈련 시스템이 쏠린 현실도 지적했다. 메달에 대한 쏠림은 배드민턴 협회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배드민턴 세계 1위인 안세영 선수의 조별 예선 첫 경기를 중계 방송하지 않아 배드민턴 팬들이 원성을 쏟아내기도 했다. 비인기 종목이라 시청률을 의식해도 방송사들의 편성 태도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훗날 안세영 선수의 실화가 영화화될지 알 수 없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앞으로도 계속되고 영화에 등장할 것 같다. 이제 이런 영화 퍼레이드는 그쳐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