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예술가는 예술을 하지 않고 일을 한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22. 7. 6. 08:25

-조성준의 예술가의 일

 

최근 정부에서는 예술가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이를 토대로 전국민에게 고용보험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예술가들은 전위 그룹인가. 무엇보다 이런 고용보험정책은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시대가 이제 바뀌었음을 공표한 셈이다. 고용보험을 언급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예술가도 노동을 한다. 물론 노동자들이 하는 일과는 좀 다를 수 있을 것이지만 본질은 같은 맥락에 있다.

 

일단 우리가 예술가에게 바라는 일이 있다면 아마도 데이비드 보위(1947-2016)일지 모른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들에 도발적인 행보를 보이고 권위를 깨는 작업들을 계속 했기 때문이다. 그는 쉴새 없이 변신했고 디스코, 재즈, 전자음악 등 새로운 다양한 장르가 등장할 때마다 적극 수용하고 외연을 넓혔다. 경계를 긋지 않고 존 레넌, 믹 재거, 팻 매스니, 브라이언 이노 등과 콜라보를 했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24시간 치열한 공방 끝에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를 만든 것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심지어 자신들에게 경쟁자일 수 있는 신예들을 적극 발굴 후원하기도 했다. 그래서 존 레논이 모든 권위에 도전했고,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긴 규칙에 물음표를 던지며 어떤 행동을 했는 지 설명하는 내용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다. 존 레넌은 비틀즈도 해체하고, 혼자의 길을 가는데 좀 더 치중했기 때문이다. 재택이라도 시대는 더욱 혼자만의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협업을 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일을 왜 하는가. 이런 화두에서 커트 코베인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커트 코베인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대개 상업적인 성공을 배격하고 순수한 예술을 지향하였는데, 자신이 유명해지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자 자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예술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오히려 커트 코베인은 성실했고, 그룹 너바나의 성공을 꼼꼼하게 설계한 건축가였다고 말한다. 결국, 그도 대다수 인간과 같이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선한 충격이지만 오히려 곧 커트 코베인이 인간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모순적이다. 상업적인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잘했으면 싶다. 성공에 집착하는 이들을 꺼리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예술혼을 불태웠다던 고흐도 동생 테오의 돈을 받아 상업적인 성공을 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는데 매진했다. 불행하게도 그가 총에 맞는 바람에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 모두에게 벌어졌으나 이같은 스토리는 극적으로 강화되어 고흐의 작품을 비싸게 만들어줘 갤러리들만 즐겁게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트 코베인처럼 예상하지 못한 상업적인 성공에 감당을 못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예술가 였음에는 분명하다. 어쩌면 커트 코베인은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에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는 앤디 워홀과 대비 된다. 우리는 대부분 일을 하고 그것의 성공을 통해서 현세에 그것을 누리고자 한다, 때문에 앤디 워홀처럼 자신의 일 공간을 팩토리(공장)이라고 말하는데 머뭇거림이 없어졌는지 모른다. 앤디 워홀과 커트 코베인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있다. 커트 코베인은 엄청난 성공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고 성공 뒤에 공허함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앤디 워홀은 그것을 이끌고 대비까지도 했으며 누리려 했다. 예술가들에게 다른 점은 더욱 극단적이다. 보통 사람들의 일은 성공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도 예술가들의 일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성공을 연이어 이뤄낸 거장도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 모든 화가들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 존 레논에게 신선함을 느끼던 추상주의 화가 폴 오스터는 우연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원리라고 말했다. 운이 더 작동하는 예술가들의 일들의 속성 때문에 그들은 더욱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고, 지미 핸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처럼 27살에 세상을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부침을 감내했다면 좀 더 삶을 이어 좋은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장국영이 살아 있다면 주윤발, 유덕화처럼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 응원의 목소리를 냈을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그는 중국 공산당의 선택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이 유덕화, 주윤발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영향이라는 면에서 정말 예술가들의 일은 그렇게 다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실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일을 주어 그것을 발전시키면서 먹고 살게 해준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K-좀비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만들 때 이런 결과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지 로메로는 단지 부두교에서 등장하는 좀비를 영상 안으로 부활시켰고 전세계적으로 좀비 아포칼립스 담론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신과 타인을 사물화시키는 좀비의 존재는 자본주의 경쟁 구조의 심화의 공포 속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을 진화시켜주었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는 B급으로 하대받았고 도대체 저 따위 작업을 왜 하는가 질타를 받았지만, 그 일은 새로운 대안 세상을 고민하는 작업에 영감을 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들 역시 제각각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고독하게 일했고, 누군가는 시끌벅적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의 결과물은 결국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 유산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우리의 일들이라는 게 대개 사소하고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새롭게 시도하는 일들이라면 더욱. 흔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연상하는 예술가들의 일이라는 것도 거의 대부분은 사소하고 미미하고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운이든 아니면 대자본의 마케팅이 들어가든 그것을 선택하는 이들이고 결국 소수가 아니라 대다수 미미하고 하찮고 사소한 일들을 하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렸다. 21세기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에는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다. 미래세대까지 보면 알 수 없음은 오히려 좋은 일이 된다. 우리는 단지 고독하게든 떠들썩하게든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다만 만약 운좋게 성공을 한다면 그것을 견딜 준비는 했으면 좋다. 남에게도 도움이 될 더 좋은 일을 위해.

/김헌식(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정책학 박사 전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