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분석

영화 나랏말싸미 역사 왜곡 논쟁, 악평의 배경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7. 25. 11:21

-관객은 무엇을 기대할까.

 

글/ 김헌식<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세종의 국가 경영"(2018), "세종의 소통 리더십(2009)", "세종의 애민 리더십(2018)"의 저자>

 


"집현전 학사가 만든 것도 세종이 직접 만든 것도 아닌 불교 승려들이 한글 창제를 주도했다?"

남들이 공들여 만든 영화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의미도 가치도 없을 수 있다.  문화콘텐츠에 정답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크린을 장악한 영화라면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 책임을 져야할 필요성 정도는 있을 것이다. 다른 영화들을 제끼고 오랜 시간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 대중적 혹평이 가해지고 있다. 이유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낯설기 때문이고,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캐릭터에 대한 기대 이번 심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한글 창제를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한 것이 아니라 사찰의 승려들과 공조 했다니 이는 일반 관객에게 낯설다. 낯선 것은 이뿐만이 아니라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불신하였고, 단지 승려들이 만든 훈민정음을 단지 이름을 빌려 주었다는 설정도 낯설다. 이런 낯설음은 갑작스럽기 때문에 영상적 폭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더 낯선 것은 세종의 캐릭터이다. 아마도 연출은 인간적인 세종에 초점을 맞추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도, 확신도 덜한 세종의 모습은 덜 매력적이다. 뭔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백성을 위한 글자 만들기에 매진했을 것으로 기대를 하는 데 말이다.총명하고 영민하며 열정과 호기심이 한데 어우러진 세종보다는 노쇠하고 많은 캐릭터에 가깝다. 더구나 창제 반대파들과 벌이는 갈등구조가 극적이지 않다. 이러한 서사 전개와 연출은 대중 영화에서는 잘 볼 수가 없으니 새로운 시도로 그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

 

대중 영화가 스크린을 지배할 수 있도록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관객이 원하는, 바라는 영화일 때이다. 아니 관객이 덜 들어도 내려가지 않는다. 이들 영화들은 100억대가 넘는 제작비를 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130억의 총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자의적인 힘으로 오랜 동안 상영기회를 이어가며 수익을 보전하려 하는 것이다. 

 

관건은 대중 영화로 적합하지 않은데 무리하게 투자 제작을 했다는 점이다. 주로 100억원대 영화들에게서 나타났다. 예컨대, 영화 ‘남한 산성’, ‘대호’, ‘관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상 이들 영화들은 대중 관객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내용이거나 결말이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을 많이 그리고 오랜 동안 지배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 즉, 제작비를 줄인다면 손익분기점도 충분히 넘을 수 있었던 영화들이었다. 결국에는 수익에 관한 욕심이 관객들에게는 외면을 제작배급사에게는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간극 속에서 벌어지는 역사 왜곡 논란은 역사 기반 사극 콘텐츠가 다양화 되고 있는 와중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21세기 콘텐츠 사학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필요하고 나름의 기여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상적 해석력을 통해 기존 사학이 못한 본질과 진실을 드러내어 공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감독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예술적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관객에게는 그것이 낯설고 심지어 역사 왜곡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중요한 것은 영화적 상상력이 역사 사실이나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거나 함의점을 새롭게 이끌어주는 역할이 있는 반면에 자칫 본질과 맥락, 진실을 놓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역사 사실 왜곡이냐라는 단순한 진실 공방에 머물지 않고 제작진이 제시하는 영화적 세계가 과연 이 시대 대중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공감을 일으키는가가 영화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영화적 시도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창작자들이 예술의 자유 이전에 항상 전제해야할 역사 기반의 창조에서 고려해야만 하는 점이다.

 

일단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고 지식의 반감기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역사 분야도 그 주기가 빠른 영역 중 하나다.
역사 왜곡 판단은 우선 그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진실을 찾아 가는 목적인지 아니면 악의적인 혐훼인지가 예술인정 요건 중 하나다. 또한 아무리 새로운 관점을 예술에 적용해도 그것이 설득력 있는 논거에 바탕을 둔 것인지 전제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은 공감은 물론 지지를 보내기도 힘들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서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그런 공감과 지지의 설득적 논거가 약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하나의 해석을 넘어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대중상업영화로 스크린을 장악한 책임의 문제이다.

 

한편으로 허구적 상상력을 예술의 이름으로 구사해도 그것이 가상의 창작이라는 점을 밝혀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실제 사실과 혼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역사 왜곡 논란은 인터넷 등을 통해 활발한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지금 논란은 건강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