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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로브>가 복지논쟁에 주는 메시지는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20:00

<김헌식 칼럼> 영화 <글로브>가 복지논쟁에 주는 메시지는

2011.01.27 08:58

 




[김헌식 문화평론가]영화 < 글로브 > 안에는 복지 논쟁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 

지난 10여년 간 정보비대칭이론의 대가 조지 애커로프 그리고 그의 제자 레이첼 크렌턴은 색다른 주제로 주류경제학에 도전해왔다. 그것이 비단 경제학만이 아니라 복지, 교육에도 연관이 있음을 처음에 그들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정체성(Identity)와 경제학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10여년간 탐구해왔고, 그러한 일련의 연구 작업들을 묶어낸 책이 바로 < 아이덴티티경제학 > (Identity Economics)다. 

그들의 연구주제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신이 인사이더에 속한다고 여기면 급여가 적어도 조직을 위해서 일한다. 하지만, 아웃사이더의 경우, 이상적인 규범은 되도록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은 인사이더에게 이상적인 규범이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는 따라서 적게 일하는 것이 효용감을 높이는 것이고 인사이더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효용감을 높이는 것이다. 

다른 예로 강력한 감독은 인사고과 평가에는 좋지만, 적당하게 일하려는 아웃사이더들을 증가시킨다. 그들은 돈을 통해서만 움직인다. 급여를 많이 주어도 적당주의를 선택한다. 하지만 느슨한 감독은 인사고가 평가의 기준은 덜 엄밀해지는 반면, 급여에 부응하여 자신의 일을 열심히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책과 논문은 정체성이 경제행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이지만, 저자들이 강조하듯이 반드시 경제적 행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 측면이나 인종갈등과도 밀접한 내용이 들어있다. 그들은 정체성의 요소를 사회적 범주, 규범과 이상, 정체성 효용이라는 구분에 따라 나눈다. 

회전목마 실험을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열 살이 넘은 아이는 4~5살의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며 회전목마를 탈 수가 없다. 이미 유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고 아동의 범주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규범에 맞지 않으면 효용은 상실된다. 자신이 부유하고 능력 있으며 멋있는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학업을 적절하게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면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규범이 된다. 어차피 자신은 그러한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수행 규범도 달라지는 것이고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않고, 모범적인 행동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효용감을 더해준다. 이러한 정도는 백인과 흑인 학생에게서도 똑같이 확인할 수 있다. 

백인 학생들은 인사이더, 흑인 학생은 아웃사이더 범주에 있을 것이다. 아웃사이더의 범주에 있을 때 이상적인 규범은 학업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은 경제적으로는 자신의 미래에 이득이 될 것 같은 학업을 잘 따라가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는 흑인학생들의 태도를 설명해준다.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로 설명하면, 아웃사이더는 인사이더에 협력을 하게 되면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효용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협력을 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는 자존심, 즉 자신의 정체성은 지키겠지만 계속 아웃사이더로 남게 한다. 소수인종우대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이러한 맥락에서 분석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소수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을 피해자로 만드는 소수인종우대프로그램은 소수인종의 범주에 구획하고 규범에 따라야 하는 사람들을 더욱 곤란하게 할 수도 있다. 

소수인종우대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결국 소수인종으로 남아야 하는 것이며, 이는 이미 사회 인사이더로 성공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과 규범에 부합하여 효용감이 높아지는 것을 말해준다. 만약 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공한다면, 그들의 자존심은 훼손될 것이다. 자칫 동정과 배려라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도 있다. 즉 지나친 우대보다는 그들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영역을 확보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자유롭고도 다양하게 확보해주어야 한다. 저자들이 말하듯이 쇼핑몰처럼 말이다. 

영화 < 글러브 > 는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청각장애인 야구단이 생기게 된 계기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특수학교 학생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진출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지도교사는 코치에게 학생들을 살살 다루어 줄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다는 것을 강조하던 교사가 비장애인과 다르기 때문에 훈련을 살살하라고 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프로 야구 선수 김상남(정재영)은 "야구가 장난인 줄 알아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야구는 전쟁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4강에 진출했던 군상상고 학생들과 연습시합을 붙인다. 막상 시합에 임한 군산상고 선수들은 실실 웃으면서 성심학교 야구부의 공을 피하고 제대로 치지지도 않는다. 그러자 화가 난 김상남이 군산 상고 팀을 모아놓고 격분의 말을 한다. 

"니들 뭐야~! 어차피 연습이니까 그냥 봐 주면 돼? 밟는 건 상관없는데, 일어설 힘마저 뺐으면 안 되잖아. 이 시방새들아! 재네들은 무슨 고생 안한 줄 알아? 자기가 흘린 땀만큼 연습하고 고통을 느껴왔어 알았냐 이 시방새들아?" 

그들에게 성심학교 즉 자신의 팀을 마음껏 밟아달라고 주문을 한다. 결국 동정과 배려는 동등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힘을 빼앗는다. 동정을 제거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실력대로 경기에 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경기결과는 0대 32였다. 그러나 소득은 컸다. 상대방이 전력투구를 하지 않으니 경기도 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력은 나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상대는 도저히 이기기 힘든 강팀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불쌍하게 보는 팀이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김상남은 야구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왔다! 너희를 부셔버릴 것이다!! 집으로 돌려 보낼 것이다. 우리가 왔다. 너희를 짓밟으러 우리가 왔다. 짓밟을 수 있을테면 밟아봐라. 우리는 승리한다, 으아아!!!!! 우리가 왔다!! 너희를 박살내러 왔다!! 집으로 돌려 보내 주겠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등하게 경기하고 실력을 쌓아서 1승을 올리려는 선수들의 자발적인 동기가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동정과 배려 차원에서 야구부를 만들었던 애초의 교감과 교사의 의도에서 더 한층 진보한 것이었다.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단순히 동정과 배려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지정책은 그 수혜의 대상자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고정화된 부정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켜서 무기력한 악순환의 나락에 빠뜨릴 수도 있다. 

정체성의 범주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변화되는 가운데 정책이 개입해야 한다. 동정과 시혜가 많아질수록 그 단기적 지원책에 상응하는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다변적 사회범주화와 그에 따른 규범화로 그들의 자발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느슨한 복지정책'이 오히려 그들의 성취감을 통한 성공을 불러일으킨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