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아바웃 타임, 2013년의 지우고 싶은 기억만 없애드립니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3. 12. 26. 11:16


로봇조립공장의 더그 퀘이트(콜린 파렐)는 일상 생활이 무료해 기억을 심어주는 업체를 찾아갔다.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면 뭔가 신나는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전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심으려는 순간 이전에 지워졌던 기억이 발견된다. 순간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는 알 수 없이 쫓기기 시작한다.


영화 '토탈리콜'의 내용처럼 기억을 지우고 새롭게 입힐 수 있을까.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사랑의 설렘을 되찾으려고 나쁜 과거 기억을 골라 지워버리고 다시 만나는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릿)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억을 지우고 다시 기억을 만드는 것은 두사람의 현재 행동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기억을 지우거나 입히는 것이 영화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원(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의 코트니 밀러(Courtney Miller) 연구팀은 최근 생물정신의학 저널 ‘Biological Psychiatry’에 발표한 내용을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로 인한 안좋은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MIT의 신경회로유전학센터 연구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실험에 따르면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에 가짜 기억을 심을 수 있었다.


광유전학을 이용해 기억저장세포(engram-bearing cell)에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신경 세포를 개입시키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팀은 기억 제거 유전자를 발견하고, 이 기억 제거 유전자 'Tet1'을 활성화 시키면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를 활성화 시키는 알약을 개발하면 부정적인 기억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처'지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도리트 론(신경과학) 박사팀은 전략적으로 'mTORC1 신호전달경로'를 차단하면 기존의 기억이 떠오른 후 다시 강화·저장되는 지점에서 교란을 일으켜 특정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앞의 실험은 모두 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그쳤다.


국내 연구팀이 '미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바다달팽이의 일종인 군소의 꼬리에 반복해 전기 자극을 준 결과,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뒤 단백질 합성을 저해해 기억을 골라서 지울 수도 있었다. 전기자극은 기억과 밀접한 것임은 다른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12월 '네이처 신경과학 저널'에 발표한 네덜란드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실제 사람들에게 전기충격으로 나쁜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 있었다. 특히 정신의학적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연구팀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고안해냈다. 이 방법에 따라 연구팀은 나쁜 거억이 오래 남자 않도록 할 수 았다고 밝혔다.


흥행 영화 '어바웃타임'은 나쁜 기억을 지우기보다는 시간 여행을 택한다. 상대방에게 말을 잘 못하는 순간 남자 주인공은 좀 전의 과거로 돌아가 그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 시킨다. 시간 여행을 과학과 별개로 낭만적으로 그리니 영화 '이터널 선샤인' 보다 더 밝고 경쾌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시간을 멈추게 한다면 불행한 일을 미리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 처럼 누군가를 구해내거나 나쁜 상황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은 흘러 곧 과거가 되고 만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바로 잡고 싶은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이 안좋은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뇌 시술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500자리 숫자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기억해 기억 부문 세계 기네스 기록보유자인 에란 카츠는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해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용서라고 했다. 용서하다’(forgive)와 ‘잊다(forget)’가 비슷한 것은 바로 용서해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소한 부정적으로 강화되는 기억은 없앨 수 있겠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곧 연말이면 한 한해 동안 좋지 않았던 기억을 없애고 좋은 기억만 남기거나 새로운 기억을 넣을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기억 청소와 재구성에 관한 기업들이 연말연시이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과학자들의 말대로 알약 하나로 특정 뇌 부위를 활성화해 기억을 청소하고 긍정적인 뇌 환경을 만들날이 올 지 모른다.


많은 정신심리요법사들이 직업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 뇌의 기억은 지울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몸의 기억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영화 '토탈리콜'의 퀘이드는 위기상황에서 예전의 훈련으로 단련된 사격과 무술 솜씨를 유감 없이 드러낸다. 이는 영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은 잃어버렸지만 그의 첩보원 능력은 여전히 탁월했고, 그는 왜 그런 능력이 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일상의 문화적인 행태들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도 온몸으로 하면 잊어버릴 수 없고 머리로만 할 사랑은 얼마든지 지워지거나 왜곡 돨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처럼 영원한 설렘의 사랑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이라 '응답하라 1994'와 같은 콘텐츠를 통해 과거의 아쉬운 사랑을 불러 내고 있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