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신경 장애인 조커가 악당이 되기까지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9. 11. 2. 14:59

신경 장애인 조커가 악당이 되기까지

-영화 조커리뷰

 

거리에서 불량 청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한 조커에게 직장 동료는 총을 쥐어준다. 위기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기라는 것. 그런 동료에게 자신은 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끝내 친구는 총을 쥐어준다. 내심 항상 불안정한 마음이 있던 조커는 그 총을 항상 몸에 휴대한다. 그런데 그 총이 아동병원에서 아픈 아동들을 대상으로 희극 공연을 할 때 바닥에 떨어지고 이 때문에 해고를 당한다. 해고를 당하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불량배들이 젊은 여성에게 감자튀김으로 성희롱을 한다. 마침 이 광경을 보던 조커는 그만 웃음을 터트린다. 웃음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그 웃음 때문에 세 명의 불량배는 조커를 놀리는가 싶더니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조커가 지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며 폭행을 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 조커는 품에 있던 총으로 결국 그 남성 세 명에게 발사하고 만다. 그런데 피격을 당한 그들은 그냥 거리의 불량배가 아니라 성공한 금융맨들이었다. 토머스 웨인(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은 이들 성공한 금융맨들을 옹호하며 시장 선거 출마 의지를 확고하게 한다. 흔히 전작들에서 보인, 흔히 노상강도에 억울하게 죽은 배트맨의 아버지와 달랐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금융맨 살인사건은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고담시에서 광대 분장으로 부유한 금융맨들을 살해한 조커 즉,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를 얼굴 없는 영웅으로 만든다. 반영웅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영웅이 된다. 이는 베트맨(브루스 웨인)이 가진 자들의 영웅, 기득권의 수호자 그 반대 지점에 조커가 있다는 언질을 준다. 배트맨의 프리퀄 영화 조커는 단지 범죄자에 불과해 보였던 조커에 관한 면죄부 영화이다. 단지 그가 나쁜 악인만은 아이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고 그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생애 스토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범죄를 모두 정당화하는 것인 아님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조커의 상징은 웃는 모습을 전복시키고, 장애의 사회적 맥락을 해석시킨다. 그는 미친 듯이 웃어제끼기 때문에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고 이에 관객들은 쉽게 범죄자는 미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전의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 ‘다크나이트’(2008), ‘수어사이드 스쿼드’(2015) 등에 등장하는 조커의 웃음은 광기를 드러내는데 치중할 뿐이고 때로는 그것이 그의 철학적 미학적 세계관을 담아내는 이미지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려주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별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범죄자일 뿐이니까. 여기에서 웃음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장애의 관점 때문이다. “누구나 조커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사회적인 구조가 범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회적 범죄발생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조커처럼 웃을 수 없으며, 본인도 조절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장애가 그렇듯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커는 정신장애도 아니고 신경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조커는 웃지 않아야할 상황인데도 제어할 수 없는 웃음을 미친 듯이 터트려 심지어 상대방을 비웃거나 조롱하는 듯싶다. 아니 웃음이 적재적소에 나오지 않으면 상대방은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조커는 메모를 사람들에게 내밀며 양해를 구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쉽게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제어할 수 없는 웃음이 나올 때, 사람들은 도리어 그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일이 있고 심지어 폭행을 가한다. 조커의 설명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조커는 그냥 장애인이라 자신들에게 항거불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분노로 쌓이고 마음의 병으로 또한 진전된다.

 

조커의 신경장애의 증상인 웃음은 틱 장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틱 장애는 반복해서 갑자기 빠르게 나타나는 근육의 움직임이나 목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 욕설이 그대로 밖에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고 제어가 쉽지 않다. 불쾌한 감각이나 느낌이 있고 긴장이나 스트레스 분노를 느낄 때 이런 틱 장애가 나타난다. 두 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나는 것을 뚜렛 증후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단순 근육틱은 눈을 깜빡이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 머리 흔들기 입내밀기 몸을 들썩이는 등의 행동이다. 복합 근육 틱은 손의 냄새를 맡거나 자신을 때리거나 물건을 던진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행위도 한다. 남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하고, 외설스런 행동을 하기도 하며, 민감한 신체부위를 만지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 속 조커의 기반은 이런 틱 장애 유형과 가까워 보이는데 다만 영화들은 광대의 광기나 웃음과 살인(비극)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쨌든 틱 장애의 관점에서 보면 조커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가지만 이를 철학적 미학적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다른 맥락이 형성될 뿐이다. 예컨대, 그것이 팀 버튼 식 영화 배트맨의 조커가 보인 예술적이 창조성이었다. , 장애인의 현실이 아니라 악당의 색다른 면을 이상적으로만 그린 셈이다. 팀 버튼의 영화가 범죄가 화학공장 주물에 떨어져 조커 캐릭터로 태어나는 수준의 틀은 이후 수어 사이드 스쿼드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만 이유다.

영화 조커에서는 프리퀄 영화답게 조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사회 환경적 요인은 물론 정책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 핵심 배경 중에 하나가 정부에서 사회복지예산을 축소했던 점이다. 예산이 축소되어 조커는 더 이상 상담을 받을 수도 없고 약도 받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그의 제어되지 않는 웃음은 더 폭발하게 된다. 지하철의 살인은 이 때문에 벌어진 셈이다. 사회복지예산이 축소되지 않았다면 그는 범죄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조커가 꿈에도 그리며 되고 싶은 코미디언 활동도 제대로 못하게 할 정도가 된다. 웃기는 사람이 먼저 미친 듯이 웃는다면 사람들이 재밌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코미디언도 못하게 된 것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감정노동을 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묘사하면서 조커 같은 장애인은 그것조차 할 수 없는 비극을 말하는 것이겠다. 오로지 범죄자만이 제어되지 않은 웃음이 허용될 뿐이었다.

 

영화 조커는 비록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정부 정책과 공공지원이 마지막 보루이자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다른 지면의 영화 평론이나 리뷰가 단지 조커의 캐릭터에 대해 주목하지만 여기에서는 이런 관련 제도와 예산 결핍 때문에 장애인이 양산될 수 있음을 아울러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을 대변하기는 쉽지 않으니 영웅의 탄생이 된다.

/김헌식(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E美지』 2019 가을(통권 13호) 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