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책

비욘드 블랙, 2009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21:03

영화는 묻는다, 장애라는 상징을

비욘드 블랙 / 김헌식

 

'장애'란 말은 가치함축적이다. 장애라고 말하는 순간, 그 시선이 되레 장애로 판정받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장애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경중에 따라 장애/비장애를 구분해버린다. 장애를 차라리 고난, 역경의 다른 이름으로 보는 편이 어떤가. 장애가 문학과 영화 같은 예술에서 메타포와 알레고리로 빈번히 쓰이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고난·역경 메타포로 빈번히 등장 

대중적 시선 돋보이는 60편 리뷰


'비욘드 블랙'(김헌식/북코리아/1만5천원)은 장애라는 상징을 통해 세상에 발언하는 영화의 리뷰들을 모은 책이다. 무겁고 딱딱한 연구물이 아니라 삶 속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대중적인 시선을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 책의 미덕이다. 방송 등 여러 매체의 문화비평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글쓴이가 장애와 관련해서 삶의 지혜와 혜안을 주는 영화로 삼은 작품은 모두 60편. "이런 영화들을 한 번에 묶어서 실제로 문화예술에 장애가 어떤 모습으로 스며 있는지를 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를 읽는 글쓴이의 관점과 해석들은 다양하다. 예컨대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에서 장애의 극명한 역설을 말한다. 사람들이 까닭없이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들이 다수가 되어 버린 세상에서는 볼 수 있는 자들이 되레 장애의 처지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현실은 그대로 지옥. "장애란 결국 비장애의 오만과 문명의 진보가 갖는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치다."

김명민·하지원 주연의 영화 '내사랑 내곁에'(2009)에서 여자의 직업은 장례지도사다. 전문직업인으로 인정된 지 얼마되지 않은, 말하자면 장의사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끝내 세상을 떠나는 남편을 자신의 손으로 염한다. 죽은 남편은 끝까지 누군가의 돌봄과 지킴을 받았으니 홀로 남은 아내보다 행복한 게 아닐까. 

글쓴이가 말하는 바는 "외로운 죽음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거노인은 어느덧 17만명. 죽음에도 국가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미비한 국가 정책도 안타깝지만 경직된 정책도 문제다. 영화 '아이 엠 샘'(2001)에서 그런 아이러니를 본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거꾸로 소외시킨다. "완고한 원칙과 명분에 충실한 제도 앞에서 장애는 좋은 먹잇감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의 슬픈 이야기 '그녀에게'(2003)는 소통불가능한 인간 존재의 지극한 외로움에 관한 영화다. 이뤄질 수 없는 소통, 교감 없는 일방적 사랑이야말로 장애에 빠진 사랑이다. 그 비극의 끝은 죽음이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인의 비애"라는 글쓴이의 지적은 아프다.

이 밖에 불려나온 작품성 높은 영화들은 무수하다. '작은 신의 아이들' '길버트 그레이프' '굿 윌 헌팅' '홀랜드 오퍼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박쥐' '똥파리' '마더' '파란자전거' '맨발의 기봉이' '노팅 힐' '잠수종과 나비' '비욘드 사일런스' '스위티' '피아노' '제8요일' '어둠 속의 댄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워낭소리' 등등. 여기서 또다른 사유의 자락을 이어가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