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분장실의 강선생님과 인턴세대의 비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09. 3. 28. 13:03

 

KBS2 < 개그콘서트 >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오랜만에 분장개그를 들고 나왔다. 파격적인 분장으로 시청자들의 비명어린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기본 컨셉이다. 매회 엽기적인 분장을 선보인다. 메시지를 제외하면 빤한 슬립스틱이다.

< 해피투게더 > 의 '박명수를 웃겨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희한한 분장으로 웃겨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희한한 분장은 고통스러운 신인 연기자들의 생활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분장역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만으로 시청자들이 눈길을 주는 것은 아니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여성판 '동작 그만'이 될 수 있다. '동작 그만'은 물론 군대 내무반을 다룬 개그꼭지였다. 변방의 북소리도 역시 조선시대의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개그들이 웃음을 주는 것은 위계질서 때문이다. 조폭이나 학교를 소재로 한 개그들도 권위와 반권위의 구도를 통해 재미를 전달해주기 용이하기 때문에 애용된다.

'분장실의 강선생님'도 위계질서가 등장한다. 분장실에서 연기를 배우며 무명의 생활을 보내고 있는 여성 연기자들이 세 층 위로 군기를 잡는 모습은 군대를 연상시킨다. 물룬 이러한 군기잡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중간위치를 차지하는 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는 안영미가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막내 정경미, 김경아나 가장 최고참인 강유미보다 주목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강유미가 존재하기 때문에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권력자의 희화화가 가능해진다. 아첨과 복종위에 군림과 부림의 이중성이 양극단을 아우른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는 안영미의 발언은 군대선임이 후임을 질타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군대같은 사회구조를 말할 수도 있고, 집단주의 문화의 일상을 파헤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데, 그만큼 공감을 많이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공감이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 의식에닿아 있는지는 따져 보아야 하는 점이다.

그런데 군림하고 군림을 받는 사람들은 결국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별 볼 일 없는 이들이다. 사실 이들은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활동하는 무명배우들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못 다 이룬 성공의 꿈을 내부 권력 투쟁을 통해서 대리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대접을 못 받을수록 내부적으로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이중심리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온갖 희한한 분장을 감내해야 하는 신인 무명들의 고군분투기이지만, 현실은 단순히 웃어버리기에는 자주 진지하게 만든다. 이 개그꼭지에서는 남들이 하기 싫은 역할을 해야만 하는 점을 잡아냈지만, 반대로 화려한 복장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어도 노예 계약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만다. 그것이 더 무서울 수 있다. 고 장자연씨도 결국에는 그러한 무명과 신인의 그늘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것에는 인턴 세대의 고뇌가 투영된다. 내로라하는 조직의 일원인 것 같지만 허울만 좋다. 좌절과 무기력을 낳는다.'분장실의 강선생님' 이전의 백수를 다루는 ´현대생활백수´와 같은 개그꼭지와 다르게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아예 백수를 다루는 것보다는 조직안의 고민들을 다루는 것이 더욱 많은 함의점들을 주는 때다.

결국 백수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최저생계비도 못 미치는 가운데 불안한 조직에서 온몸으로 매달려 있어야 하는 수많은 청년들, 가장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단지 일부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대중연예계나 공연장만큼 극단으로 치닫는 곳도 없기에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주목받을 수 있었다. 비정규적으로 오랜 세월을 감내한 국립오페라합창단원의 해고는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 이'분장실의 강선생님' 은 여성들의 직장생활을 빗댄 감이 있기 때문에 가벼운 칙릿의 한계를 벗어날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직장 생활과 사랑, 성공과 처세를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소비상품구조와는 약간 거리를 둔 칙릿이 될 것이다.

수많은 인턴 세대들은 언제인가 정규직이나 일정한 지위에 오르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권력구조, 부림과 굴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고, 끝은 알 수 없으니 다른 이들과의 ´차이두기´로 위안삼는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보여주듯이 분장실안의 군림과 복종은 씁쓸한 맛을 남긴다. 역겨운 분장의 단역 맡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특히 경제 위기 상황은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이준익 감독이 그의 영화를 통해 말하려 하듯이 모두 1등이 될 수 없는 근본적인 구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루저 문화의 전형으로 이야기해주는 함의점일 것이다. 영화 '핸콕'(Hancock, 2008) 영웅조차도 거리의 루저에서 자유롭지 않은 세상이다. 치명적인 약점은 여기에 있다. 그들의 행태는 그들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분장실의 강선생님'이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그 내부만이 아니라 그 분장실에 그들을 가둔 구조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점이 있다. 남성이 그렇게 망가져도 별로 웃기지 않을 것이다. 조혜련의 골룸과 같이 여성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망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그것은 또하나의 여성 도구화일뿐이다. 추해야 사는 여자들이 대안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