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성애 드라마를 찬성하면 진보라고?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9. 19:16

<김헌식 칼럼>동성애 드라마를 찬성하면 진보라고?

 2010.11.07 06:44

 




[ 김헌식 문화평론가]몇 년 전 텔레비전 부모상담 프로에 출연한 적 있었다. 주제는 학교 내 동성애였다. 당시에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팬 픽션이 유행이었다. 본래 팬 픽션은 팬들이 만드는 작품이다. 하지만 일본의 야오이 문화가 크게 접목되면서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예인스타들이 등장하는 팬 픽션인데, 주로 스타들 간의 동성애가 주 내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디지털 매체의 폭발 때문인지 동성에 대한 감정 때문에 성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학생들의 사례가 속속 보고 되고 있었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인정해야 하겠다. 이는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이거나 개성화의 존중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해 보인다. 

이러한 맥락의 말을 했다.'사랑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선택과 권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 말을 하는 자신은 뒤통수에 소름이 돋았고, 그 순간 등 뒤에서 땀이 쭉 났다. 두 가지 때문이었다. 부모의 입장과 한국적 현실이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폐쇄적이라고 할 때 개방적인 나라의 동성애와 다른 고난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건 동성애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할 수는 없다. 학생과 자녀를 담당하는 차원에서는 고민스럽다. 

동성애에 대한 옹호는 교사와 부모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에서 이는 아젠다 설정과 미디어 효과 면에서 큰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동성애자와 같이 소수자의 범주에 속하는 장애인 문제와 다른 측면이 있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고, 언제나 그러한 잠재적 범주에 있다. 더구나 숫자나 비율의 측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성애의 구성주체와 범주는 대개 명확하다. 

그렇기에 미디어에서 동성애를 전적으로 다루고 그곳이 인터넷 포털을 장식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부각을 일반화의 오류를 낳게 된다. 동성애는 정말 아주 소수의 문제다. 미디어 효과에 대한 논의는 분분했지만, 대개의 경우 해당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 결정적으로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미디어 속의 동성애가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최근 < 인생은 아름다워 > 라는 드라마가 동성애를 다루어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그간 동성애를 다룬 이 작품은 원활하게 방송되지 않았다. 특정부분이 잘려나가는가 하면 왜곡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일부에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있고, 신문광고까지 크게 실리기도 했다. 창작의 자유가 훼손된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의 매체적 특수한 상황과 조건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이 해당 작품을 쓴 노년의 작가다. 문제는 작가의 태도와 대응이다. 지상파 텔레비전 드라마는 독립영화나 케이블 채널 드라마가 아니다. 나아가 소설이나 만화도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이다. 해당 드라마에서는 동성애가 지나치게 크게 도드라지게되어 전체적인 스토리텔링과는 별개로 너무 크게 부각되었다. 더구나 작가의 역량과 영향력에 맞지 않았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반대자들에게 '이성애는 아름답고, 동성애를 더렵냐'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를 비판하는 이들을 마치 매우 문제 있는 이들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것은 일면 타당하면서도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마치 진보적인 작품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포장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결국 유한층 꽃미남 동성애 코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많음에도 단지 방송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루었기 때문에 마치 진보적인 작품인 것처럼 우대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는 마치 동성애를 다루었다고 인디예술상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동성애 드라마가 많았음에도 유독 이 드라마는 한국의 대표적 인기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크게 화제가 되고, 마치 집필 작가는 진보적인 작가인 것처럼 우대된다는 것. 더구나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 작가 입장에서 트위터를 통해서 인터넷 받아쓰기 기사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세몰이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동성애 문제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며 동성애의 본질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작품에게 너무 과도한 찬사만을 남기는 결과만을 부추기고 있다. 방송국관계자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영화, 소설, 만화에서 동성애가 다루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이기 때문이다. 금기를 다루는 것은 그 자체가 노이즈를 일으켜 주목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주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동성애를 두고 차별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자신들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적 불문율에 스스로 고통을 당하는 측면이 강하다. 금기의 소재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마치 사회변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동성애에 대한 견해는 직선적 발전 사관과도 관계가 없다. 동성애의 역사는 돌고 돌았으며 순환의 법칙을 따랐을 뿐이다. 예컨대, 불교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결혼과 육아를 거부하는 가치관을 일반 사회에 적용시키기에는 한계가 많다. 이 때문에 불교를 숭상하는 고려 때까지의 패러다임을 물리치고 신유학이 조선을 통해 번성했다. 신유학적 체제에서는 가족주의가 크게 부활했다. 당연히 고려시대와는 달리 동성애는 금기시되었다. 서양에서도 동성애는 부침의 순환고리에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찬성 여부는 잘나고 못 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이다. 

그런데 동성애를 찬성하면 진보이고, 반대하면 보수가 되는 프레임이 언제부터인지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구도로 볼 수는 없다. 개인을 우선하면 진보이고, 공동체나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보수일 수도 없다. 그것은 별개와 우선의 문제가 아니다. 같이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오히려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가와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가가 혼재되어 진보와 보수 개념이 뒤섞여 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생각할 때 찬성할 수 있지만, 가족과 사회의 재생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관적 확율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주관적 확신주의는 더 중요하다. 만약 드라마 < 인생은 아름다워 > 의 작가의 자녀들이 동성애자였다면, 이런 드라마를 쓸 수 있었을까 묻고 싶다. "아들하고 같이 보세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아들로 만들어주세요." "동성애 거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도록 해볼 생각이에요. 감사해요."이러한 작가의 발언은 결국 자신의 아들이 동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관점이 배제되어 있다. 

결국 추상적 관념주의를 감상적 가족주의의 비극적 소재로 사용했지만, 그것이 미칠 속 사회적 깊은 내막은 도외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을 진보로 만들고 다른 이들을 무도한 무리들로 만드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무책임한 문화 권력자의 무감각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