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분석

누구나 '그녀는 예뻤다' 황정음처럼 될 수 있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5. 9. 17. 09:45

MBC 새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동영상 화면 캡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은 첫사람 앞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첫사랑앞에 당당하게 앞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당당하게 나설 수 없었던 것일까. 당장에는 첫사랑 앞에 나설만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상에서는 외모의 변화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황정음의 외모를 이미 알고있기 때문에 적어도 모든 드라마들이 극중 배역의 외모를 한참 처지게 묘사해도 그들의 외모는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첫사랑 앞에 나타날 수 없었던 것은 사회경제적 위치의 변동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녀에게서 봐야 하는 것은 누구나 그런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폭탄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초점은 누구나 노력을 하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지 못한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가 던져준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예컨대 성적이 좋지 않거나 학교진학을 제대로 못할 경우 그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황정음 분)은 본래 잘 사는 집 공주님'이었다. 공주님이라고 표현한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가 강하며 첫사랑 지성준(박서준 분)의 눈에는 당연했다. 집안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옷도 잘 입었을 것이고 영양상태가 좋으니 귀티가 나보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린 시절의 김혜진은 많은 또래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지성준은 비만이 가난의 질병이라도 되는 듯이 뚱뚱하고 상대적으로 심리적인 왜소함에 빠져 있었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지성준은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녀와 야수 컨셉은 언제나 낭만과 환상의 심리적 충족감을 준다. 그러나 기존의 미녀와 야수 컨셉과는 확연히 달랐다. 

두 사람의 상황은 변했다. 말그대로 김혜진은 미녀에서 야수(?)로, 지성준은 야수에서 미녀 아니 미남이 되었다. 김혜진의 집안은 말 그대로 망했다. 집안이 가난해지면서 김혜진의 신상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김혜진은 교육의 기회를 덜 받게 되었다. 초등학생 김혜진에 대해 지성준은 공부를 잘하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그 뒤에도 그래야 했지만, 김혜진의 실제는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다. 

경제력이나 가정형편 그리고 집안 분위기는 개인들의 학습 성취나 학습 기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 빠지면 정신적 여유는 없어지기 마련이다. 성취면에서 무력감을 갖거나 자포자기의 마음가짐을 갖기 쉽다. 이런 심리적 상황이라면 외모에 대해서 무심해지기 마련이다. 김혜진이 폭탄녀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비단 드라마 속 주인공 김혜진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이들과 달리 성취할 수 없는 토대를 갖고 있는 이들은 얼마든지 많다. 심지어 여유로운 토대를 갖고 있어도 하루 아침에 풍비박살 날 수 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해고나 퇴직을 강요 당하거나 불의의 사고나 질병을 얻어 그 토대가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의 붕괴는 언제든 일어난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뒤쳐질 수 있는 학생이나 청소년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그들의 개인적인 능력과는 관계없이 성취할 수 없는 장애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혜진이 비록 학벌이 없어 취업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은 이런 사회경제적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물론 앞으로 드라마의 전반적인 흐름은 첫사랑과 새로운 사랑 사이의 삼각관계가 줄타기 하듯이 벌어지겠지만 말이다.

실력을 강조하는 시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는 현대사회일수록 이 드라마의 김혜진 같은 인물을 간과할 수 있다. 한순간에 지금 언제나 있을 것 같은 물적 토대가 사라지고 정상적인 레이스에서 이탈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관련 복지정책이 있는 것이고 교육이나 고용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식적 전환도 항상 있어야 한다. 지금 개개인의 위치가 비단 개인이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개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이 간과되면 안된다. 

소수의 젊은날 얻은 기득권을 넘어 다수에게 새로운 기회를 통해 자신의 성취감을 발휘해 원하는 입지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창조경제와 창조산업의 핵심적인 구동 원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놀림을 받던 찌질남 지성준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놀라운 변신을 하고 돌아온 것은 비단 미국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새로운 기회 부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누구나 김혜진처럼 될 수 있고, 반면에 지성준처럼 되어야 한다. 김혜진이 지성준처럼 된다면 더욱 금상첨화의 패자부활 대한민국일 것이다.

글/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