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시네마 리뷰

낙관적인 희망은 위험해, 그럼 어떤 희망?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8. 3. 19. 22:38

낙관적인 희망은 위험해, 그럼 어떤 희망?

낙관적인 희망의 역설

''''파란입이 달린 얼굴(2018)

 

빅터 프랭클의 주요 저서 가운데 하나인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An Introduction to Logotherapy)에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특징을 말했다. 두 가지 유형에서 어느 쪽이 살아남았을까.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내일 전쟁이 끝나고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과 곧 수용소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지만 매일매일 수용소의 생활에 맞서 열심히 살아가는 쪽 가운데 어느 쪽일까.


낙관적인 희망을 품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사람들은 능동적이었고 생활은 빛났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낙관적인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큰 희망을 갖고 있지 않던 이들은 절망할 필요가 없었다. 막연한 희망을 품고 낙관하는 생활이 오히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주변에서 쾌활하고 명랑한 사람이 순식간에 우울감과 절망감에 빠져드는 심리상태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파란입이 달린 얼굴>(2018)의 경우에도 이같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파란입의 얼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서영(정리우)와 영준(진용욱)은 같은 남매인데 전혀 다른 생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서영은 미래에 대해크게 낙관적인 희망의 갖고 있지 않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일상이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그 어머니 병원비를 치러야 한다. 또한 지체 장애인 영준을 위해 식사등을 챙겨야 한다. 빚을 지고 살기 때문에 사채를 끌어 쓰는 가운데 돈을 버는 과정에서 서영은 순탄하지 않다. 허위로 가격을 매겨 마트에서 손님에게 물건을 팔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옮긴 직장에서는 다른 직원들과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어머니에게는 심지어 병원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병원에서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동생에게는 하루빨리 집에서 나가 독립하기를 원한다. 서영의 얼굴에는 언제나 표정이 없으며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큰 포부같은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방에 스님과 같이 가지고 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스님과 같이 지내기도 한다. 사람들과 싸워야 할 때는 치고박고 싸운다. 다만 미래에 반찬가게를 하겠다는 생각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 살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얻은 음식 솜씨 때문이었다. 다른 직장 동료 여성들이 감탄할 정도의 실력! 그 외에 서영이 갖고 있는 특별한 기술은 없다.


영준은 지체장애인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감에 차 있고 언제나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집에서는 요리를 직접 자신이 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도 한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는 항상 자신이 없으면 회사가 쓰러진다고 말한다. 그가 하는 일은 미싱 재단사다. 직장이 반지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휠체어로 이동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 출근할 때 직원들이 옮겨 준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그를 내치지 못한 꼼꼼한 실력 때문이다. 하지만 점심을 으러 밖으로 나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직장은 재무 상황이 어렵다. 그런데도 사업주는 샘플을 가지고 영업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자 영준은 직접 샘플을 들고 각 업체를 방문하겠다고도 한다. 그는 동료들은 무관심하고 사업주는 무능하다고 말한다. 좋은 디자이너를 만나서 그 디자이너가 독립하면 자신도 그곳에 취직할 꿈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영준은 결혼을 해서 누나가 사는 집에서 나가 독립하는 것이다. 회사에 업무 때문에 오가는 젊은 디자이너를 마음에 둔다. 마침 누나가 하루빨리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하고 심지어 결혼상대자를 찾아 맺어주려 한다.


하지만 영준은 마음에 두고 있는 디자이너의 매장에 찾아간다. 꽃을 가슴에 안고. 같이 독립해 살자는 말을 어렵게 한다. 당신이 옷을 디자인하면 자신이 그 디자인을 옷으로 만들면서 살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거절이었고 꽃은 되돌려졌다. 낙담은 우울감으로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그것은 결국 미싱에 자신의 팔을 다치게 한다. 상황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다리가 불편한 데다가 팔까지 움직이지 못하면서 일을 못하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더욱 힘들어졌다. 누나는 지적 장애인 여성과 자신을 결혼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더욱 절망을 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옷을 갈가리 찢고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파란입의 얼굴 장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영준의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극적으로 살아내려는 의지가 강한 그가 어느 한순간에 생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래도 긍정적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점은 무조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살아간다고 했을 때 그것이 오히려 절망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현실성이 없이 무조건 미래를 긍정으로만 보면 정작 심각한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에 대처하고 헤쳐 나가야 할 지 모른다. 반면 서영은 미래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장밋빛으로 생각하는 것이 없다. 다만 하루하루 어떻게 버텨나갈지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한다. 자신이 엄청나게 쓸모있는 사람으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했다.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커다란 기대가 없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없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었고 그들이 자신의 말대로 따라오거나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준은 디자이너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녀와 결혼을 할 경우에는 더욱 더 자신의 꿈이 열릴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커다란 희망을 품지 말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턱대고 품는 낙관은 큰 실망으로 돌아오고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한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기대하거나 한 가지에 큰 미래를 건다는 것은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 치명적인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마치 거대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유태인들도 그런 상황에 있었을지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 기대는 스스로 타개할 수 있고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할 때 결말도 소망스럽다. 전쟁은 유태인 즉 수용소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우리 스스로 보다는 다른 상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영준의 경우에도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여 미래를 만들어가는 상황이었다. 디자이너는 영준에게 아예 마음도 없었는데 일방적으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지적 장애인 여성에 대해서는 아예 만나지도 않고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상황이 닥치자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한편으로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비장애인 누나와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누나는 그를 억지로 독립시키려 하지 말았어야 한다. 장애인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규정은 극도로 부정하려는 것이다. 준영이 자신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나아가려한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만을 우선하여 생각했던 누나 서영의 행동은 그렇게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온통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이 서로 협력해야할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들과 함께 힘들더라도 같이 가야하는데 물어뜯고 심지어 그들을 배제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도 그리 좋은 삶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엄마와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아 있는 삶이 정말 행복할까. 그렇다면 서영은 단순히 이기적인 것을 넘어서서 소시오 패스나 싸이코 패스로 보인다. 자신에게 힘든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자신의 언행을 합리화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김헌식(컬처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