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비교문화

“비틀스·일본 만화처럼 외국서 먼저 찾는 콘텐츠 살려야”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2. 2. 18. 15:27

[한류 업그레이드] “비틀스·일본 만화처럼 외국서 먼저 찾는 콘텐츠 살려야”

고정민 한국창조산업연구소장

[세계일보]
고정민(54·사진) 한국창조산업연구소 소장. 그는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 현장의 산증인이었다. 문화콘텐츠를 산업 측면에서 접근한 연구자였다. 각국의 한류 인기를 표현하는 한류지수를 개발해 해마다 발표하는 등 문화현장을 큰 틀에서 살펴보고 있다. 1986년 삼성경제연구소에 들어간 이래 계속 문화콘텐츠 현상을 지켜봤으니 벌써 4 반세기가 넘어섰다. 당연히 한류의 태동과 발전, 침체, 재도약을 지켜봤다. 그 오래된 관심의 지점은 이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한류의 미래로 향해 있다. 그런 가치를 인정받았는지, 2009년부터는 홍익대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전공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같은 해 삼성경제연구소를 벗어나 한국창조산업연구소를 차렸다. 그는 “단군 이래 우리 문화콘텐츠가 해외에서 한류처럼 광범위하게 소비된 경우는 없었다”면서도 “문화콘텐츠는 수출이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1년은 K-팝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은 원년이었던 것 같다. 한류 차원에서도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야 하지 않겠나.

“대중음악계 차원을 넘어서 지난해는 의미 있는 해였다. 올해도 K-팝의 인기는 이어질 것이다. 처음 해외시장에 진입할 때는 틈새시장 개발 측면에서 접근했겠지만 이제는 변화도 모색해야 한다. 그간 K-팝은 댄스음악 일변도였고, 그룹도 댄스그룹 위주였다. 장르 다변화가 필요하다. 록과 발라드, 걸그룹과 보이밴드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과 가수가 출연해야 한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팬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K-팝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인 동시에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 가하자”는 제안으로도 들린다. 

“그렇다. 물론 K-팝이 주어진 환경에서 잘한 것은 사실이다. 처음 해외시장에 진입할 때, 한국 가수 ‘개인’이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디션과 트레이닝 등 기획사의 방식이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뜻을 지닌) K-팝 10대 법칙이 안 나온다고 할 수 없다. 케이팝은 젊은 남성 가수그룹 혹은 예쁜 여성 그룹으로 이뤄지고, 가창력보다는 댄스로 승부를 걸고, 혼자서는 대형 콘서트를 소화할 수 없고….”

고 소장은 이런 생각이 기우는 아니라고 했다. 다른 기획사를 따라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류 초기 부흥을 알렸던 드라마의 인기가 시들해진 과정에서 교훈을 얻자”고 말했다.

“외국 팬들과 연구자들 사이에 ‘한류 드라마의 법칙’이 있다. 자주 언급되는 법칙이다. 주인공이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다, 복잡한 가족사가 밝혀진다 등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 드라마는 사극과 애정 드라마인데, 애정 드라마는 대개 이런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드라마 제목은 달라져도, 또 보기에는 식상하다는 것이다. K-팝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스트
―방송사나 기획사의 노력 못지않게 정부의 역할을 주문해 왔는데.

“정부가 문화산업 수출에 개입하면 ‘국가 브랜드 수출’로 인식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국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반감이 있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화제국주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너무 깊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정부 개입은 환경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공개적으로 도와줄 일은 무엇이 있을까.

“대중문화는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는 게 대전제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도 발생한다. 제한적이지만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과점·불공정 분야에 경쟁 환경을 만들고, 연예인과 기획사 사이에도 공정계약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 저작권 등 창작에 따른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한류 문화콘텐츠에 선순환 구조가 뿌리내릴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 불법복제는 심각하다.”

저작권 보호 등은 우리 정부의 의지가 있더라도 당장은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고 소장은 “상대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필요해서 우리 문화를 수용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동유럽 젊은이들에게도 K-팝은 삶의 활력소다. K-팝 댄스를 배우던 폴란드 팬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외국 팬들이 필요해 수용하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지 않은가.

“한류 15년이 다 된 지금,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끈 게 우리가 자랑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중화권을 중심으로 아시아 팬들이 먼저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한류’라는 명칭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인기가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푸시(Push)’해서는 안 먹힌다. 현지에서 끌어당기는 ‘풀(Pull)’형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틀스와 일본 만화가 해외에서 성공한 이유를 보자. 소리 소문 없이 이들 문화를 즐기던 팬들이 요구하니까, 외국의 방송사와 기획사들이 이벤트를 만들거나 수입한 것이다.”

―문화현상 차원이 아닌 산업 측면에서 바라볼 때 한류의 위상은 어떤가.

그동안 한국의 수출품이 무엇이었는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이 중심이 된 산업 아니었나. 그런데 한류는 이제 제조업을 벗어난 영역에서 한국산 제품이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에 자긍심을 주는 것이지만, 동남아와 남미 등 여러 지역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심어줬을 것이다.”

글·사진 박종현 기자

고정민씨는
●1986년 삼성경제연구소 입사
●2000년 성균관대 박사
●2009년 홍익대 대학원 전임교수·한국창조산업연구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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