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테크놀로지

‘데이터 템플(DATA Temple)’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4. 4. 7. 07:16

만물을 데이터로 또 시청각 예술로

‘데이터 템플’ 프로젝트 성과발표회

2014년 04월 03일(목)

 > 융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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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하는 ‘데이터 템플(DATA Temple)’ 프로젝트의 성과발표회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남산 서울예술대학교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에서 열렸다.

데이터 템플은 인간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수학과 과학으로 설명하고 이를 시각화하고 청각화하여 새로운 장르의 예술로 표현하는 융합 프로젝트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지원으로 해외 전문가를 초청해 1년 가까이 국내 예술가들과 협업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해외에서는 ‘디제이 스푸키(DJ Spooky)’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인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폴 밀러(Paul D. Miller)가 초청되었다. 국내에서는 오준현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과 교수와 우디 박 실용음악과  교수, 김주섭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 지난달 28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데이터 템플 프로젝트' 성과발표회가 진행되었다. 사진 오른쪽이 DJ 스푸키.  ⓒ서울예술대학교

이날 발표회는 데이터 예술의 원리와 과정을 설명하는 학술대회와 전시회 그리고 데이터 청각화를 이용한 퍼포먼스 공연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만들어낸 데이터, 예술로도 표현 가능하다

‘템플(temple)’은 신전이나 사원처럼 성스러운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다. 불멸의 또는 가상의 존재인 신이 거처할 수 있도록 특별히 꾸민 곳이다. 모든 종교는 템플을 만들어 예배를 드리거나 집회를 개최한다. 가톨릭의 성당, 개신교의 교회, 불교의 사찰을 비롯해 유대교의 시나고그, 이슬람교의 모스크,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 우리나라 전통의 당집도 일종의 템플이다.

그런데 ‘데이터 템플’이라니. 데이터(data)를 신으로 모시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이름부터 수상하다.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표현이다.

데이터는 재료 또는 자료를 가리키는 라틴어 ‘다툼(datum)’의 복수형이다. 처음에는 물체 또는 문장을 구성하는 여러 소재들을 칭하는 표현이었지만,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정보처리 기술이 등장하면서 수치와 숫자의 묶음을 가리는 말로 바뀌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전기장치를 통해 주고받는 신호만을 데이터라 부르지만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것은 데이터에 속한다. 설문조사에 의한 통계학적 계산 결과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에 적용되는 규칙도 일종의 데이터다. 문화와 행태까지도 데이터로 치환할 수 있다.

만물을 데이터로 파악하는 작업은 정보물리학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정보를 수학적으로 파악하는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과 만물의 근본원리를 캐묻는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이 합쳐진 정보물리학은 힘이나 에너지 같은 고전적인 개념 대신에 ‘데이터’를 이용해 우주를 이해한다.

덕분에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현상들을 수학적인 데이터 계산식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양자와 전자가 만나 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일종의 계산이며, 서로 다른 물질이 하나로 합쳐지거나 세포가 분열하는 것도 데이터를 산출해내는 방식이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자체가 하나의 컴퓨터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그 안의 모든 것들은 갖가지 데이터들을 산출해내고 있다.

예전에는 데이터와 정보가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였으며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놀이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수학을 통해 음악을 이해하고 옛 동양인들이 음양과 오행을 이용해 만물을 설명하거나 윷놀이를 즐긴 것도 일종의 데이터 계산이자 놀이 문화였다.

이번에 진행된 데이터 템플 프로젝트의 성과발표회는 데이터를 다루려는 인간의 노력을 예술이라는 장르에서도 이어가기 위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시각화와 청각화 통해 예술로 재탄생한 데이터

학술대회에서 폴 밀러는 ‘서울 대위법(Seoul Counterpoint)’이라는 제목의 기조발표를 통해 데이터 시각화와 청각화 작업을 설명했다.

‘DJ 스푸키’라 불리는 밀러는 철학과 불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이면서 전자음악과 힙합을 작곡하는 음악가이다. 최근에는 과학적 결과물을 음악으로 전환시키는 융합 작업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과학자들과 함께 남극을 방문해 빙하가 얼고 또 녹는 수십만 년의 데이터를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간의 활동은 홈페이지(http://www.djspooky.com)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학창 시절 백남준의 디지털 예술에서 감명을 받았다는 밀러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적 요소들을 접하고 이를 이용한 음악 작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윷놀이, 태극, 천부경 등 우리나라 전통의 요소들이 현대적인 데이터 기법과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서울 퓨처 시티(Seoul Future City)’라는 전자음악으로 변환시켰다.

데이터를 음악으로 변환하는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우선 각 문화전통을 접할 때마다 특징적인 패턴을 탐색한다. 상징물이나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에도 패턴이 녹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당놀이를 통해 공연되는 탈춤이나 무당이 펼치는 굿도 독창적인 패턴이다.

이러한 패턴을 단순화시켜서 핵심적인 요소만 남게 한 후에 멜로디와 비트에 대입시켜 리듬을 만들어내고 음악을 창조한다. 데이터 템플은 과학적인 계산과 무속적인 문화를 하나로 합친 새로운 장르의 융합 프로젝트다.

▲ DJ 스푸키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인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융합 아티스트 폴 밀러(오른쪽) 그리고 함께 무대를 장식한 멀티미디어 예술팀 '니나노 난다'  ⓒ임동욱

이어 우디 박 교수가 ‘데이터의 사운드화를 통한 음악 창작’이라는 발표를 통해 데이터 청각화의 원리를 설명했다.

음악을 구성하는 각 ‘음표’가 데이터라면 음표가 모인 ‘코드’는 데이터의 상위 개념인 메타데이터가 된다. 코드를 적절히 배열하고 연결하면 하나의 음악이 되는데 이를 각 지역과 문화에 맞게 다양한 장르로 표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밀러는 여러 데이터를 샘플링해서 메타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음악으로 구성한 뒤에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데이터 청각화를 완성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과학자가 예술가에게 소스를 제공하고 음악가는 과학적 데이터를 새로운 장르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학술대회 후에는 전자음악과 무속음악, 클래식 악기와 전자악기, 우리나라의 전통 장식물과 레이저쇼가 하나로 합쳐진 스탠딩 공연이 펼쳐졌다.

국적이 뒤섞인 멜로디와 반복적인 저음이 어우러지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고 관객들은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지르며 고대의 템플에서 연회가 벌어지듯 음악으로 빠져들었다. 딱딱해 보이기만 하던 데이터도 시각화와 청각화를 거쳐 충분히 예술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4.04.0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