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논평

동성애 ‘격ㆍ세ㆍ지ㆍ감’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1. 2. 13. 19:49

동성애 ‘격ㆍ세ㆍ지ㆍ감’



스크린 통해 본 性인식변화

1998 수입불가 → 2008 흥행코드

‘왕의남자’첫 1천만 관객 스타트

‘메종드 히미코’등 인기몰이

젊은층 야오이ㆍ팬픽 열광도 한몫


꽃미남에 판타지 결합 공식엔 우려


동성애 코드가 금기를 넘어서 흥행코드로 자리잡았다.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소년, 소년을 만나다’에 이어 ‘쌍화점’까지 거침없이 화제를 몰고 다닌다.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까지 받은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가 동성애를 주제로 한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수입불가 판정을 받아 1년간의 심의유예를 거친 후 개봉된 것이 1998년. 이후 10년이 흘렀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동성애 코드는 어떻게 흥행코드가 되었나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예쁜 남자 이준기가 흥행의 일등공신이었다. 천만 관객을 넘은 ‘왕의 남자’는 한국에서 동성애 코드가 대중적 흥행 코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첫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영화는 이후에도 꾸준히 나왔다. 파격적인 동성 섹스신이 나오는 ‘후회하지 않아’는 독립영화로서는 대박인 5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오다기리 조가 게이로 나오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 등도 마니아 팬층이 두텁다.

“네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상관안해. 가보자 갈 때까지”라는 유명대사를 낳은 MBC ‘커피프린스 1호점’도 동성애 코드가 극 중 재미를 더했다. 1993년 영화 ‘가슴달린 남자’의 남장여자 박선영을 두고 비슷한 상황에 처한 최민수가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는 등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던 것을 떠올려보면 큰 인식의 전환이다.

현재 유행하는 꽃미남 동성애물은 여성의 소비력 상승과 함께 대중적 흥행코드로 떠올랐다. 일본은 남성 동성애물인 야오이(やおい) 만화가 당당히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일본 야오이 만화와 팬픽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는 더 이상 음지의 것이 아니다. 주로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 간의 사랑이야기를 팬들이 직접 창작하는 팬픽은 일종의 판타지적 재미를 준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팬픽’을 치면 8986개의 카페가 검색될 정도다.


꽃미남 4인방이 등장하는 ‘앤티크’는 동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전혀 아님에도 ‘마성의 게이’ 민선우(김재욱 분) 덕에 동성애 코드로 화제가 됐다. 영화에서 그를 향해 ‘야, 이 호모새끼야’와 같은 대사도 등장하지만, 그런 편견조차 영화는 즐겁게 흡수한다. 12월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쌍화점’도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장면이 세간의 관심사다. 고려 공민왕과 꽃미남 호위무사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팩션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판타지의 틀에 갇힌 동성애

단편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극장개봉을 하는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김조광수 감독은 실제로도 게이다. 소년들의 첫사랑을 풋풋하고 밝게 그려낸 그는 “어둡고 우울하고 진지한 퀴어영화가 불만이었다”며 “나 스스로도 편하게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밝고 즐겁고 명랑하게 사는 게이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중문화 속 동성애가 밝고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현실적 거부감은 여전하다. ‘소년, 소년을 만나다’에는 동성 간의 키스신조차 등장하지 않지만 배우 캐스팅에 애를 먹었다. 김조광수 감독은 “퀴어영화인 데다 단편영화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인배우를 물색했다. 그러나 퀴어영화에 나왔다는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우려해 신인들이 오히려 겁을 냈다”고 전했다. 이에 김조광수 감독은 당초 염두에 두었던 김해성과 이현진 캐스팅으로 선회했다.

한국에서 아직 동성애는 꽃미남들 간의 예쁜 사랑으로 그려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는 스탠퍼드는 대머리에 나이도 많은 게이다. 그러나 한국 대중문화 속에 게이는 꽃미남 판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트렌드에 민감한 광고도 예외가 아니다. 한 통신회사의 광고에 나오는 ‘괜찮다 싶으면 여자친구가 있고, 완벽하다 싶으면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 같은 동성애라고 하더라도 대중문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아직 음지로 남아있다. SBS ‘바람의 화원’에 윤복과 정향의 관계 정도면 대단한 파격으로 볼 수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꽃미남 동성애물은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넘어서는 과도기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를 답습하며 흥행을 위한 소재주의 단계에만 머무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면서 “동성애에 대한 비판이건 옹호건 간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동성애 영화와 동성애 코드 영화는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오연주 기자(oh@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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