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들이 갑자기 죽을 때 가장 염려되는 것은?
한국 남성들이 갑자기 죽을 때 가장 염려되는 것은?
- 야동과 음식 탐닉 그리고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과 사바나 효과
영화 '찌라시ㅡ위험한 소문'에서 도청전문가 백문(고창석)은 한국 남자들이 갑자기 자신이 죽었을 때 가장 걱정 되는 게 뭔지 아냐고 묻는다. 아내나 자녀들일까. 혹은 몰래 숨긴 비상금일까. 백문은 예상외의 답을 전한다. 그는 한국 남자 절반이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있는 야동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한다. 물론 어디에서 조사한 결과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야한 동영상이 없어질까, 그것이 아깝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야한 동영상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까 두려운 것이다.
백문은 또한 수사기관에서 야동을 항상 접하는 이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특별 관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지도층인사일수록 이런 동영상은 약점이 된다. 겉으로는 품격을 유지하는 지위에 있을수록 그렇다. 도덕적 수치심이야말로 사람을 붕괴시킨다. 당연해 보이는 이런 심리도 새삼 독특한 인간 현상이다.
야동을 즐겨보는 것은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높다. 자신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걱정되는 포르노그래피에 탐닉하는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를 '사바나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1만년 전 아프리카 원시시대 초원에서 살던 인류는 시각을 통해 사물이나 환경을 파악했다. 학자들은 그 때 형성된 남성들의 시각과 뇌는 현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데, 변화된 환경을 못 따라 간 것이 야동 탐닉이라고 말한다.
즉 예전에는 영상미디어콘텐츠가 없었다. 이런 영상 콘텐츠가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흥분까지 한다. 사바나 시기에는 보는 모든 것이 실제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존재 유무를 의심할 수 없었다. 변화된 테크놀로지에 능동적으로 진화를 하지 못한 것을 포르노그래피 탐닉이 보여준다. 이제 시각적 지체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진화심리학 교수인 베리는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원래 초정상 자극의 개념은 1930년대 노벨상을 받은 니코 틴버겐이 고안했다. 이는 원래 실물보다 가짜가 본능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는 이론이다. 동물의 관찰에서 도출된 개념인데 대표적으로 뻐꾸기 알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뻐꾸기 알은 다른 새의 둥지에 넣어지게 되는데 이 때 뻐꾸기 알은 화려하고 감각적이다. 새들은 자신의 알보다 더 자극적인 뻐꾸기알을 내치지 못한다.
이런 초정상 자극은 성적인 본능에서 두드러진다. 남자들은 포르노그래피의 자극을 선호하고 여성들은 로맨스 스토리에 열광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그런 동영상에 탐닉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남성들도 로맨스 드라마에 빠지는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이는 모두 가짜이다. 이런 면에서 누가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가 없다. 남성들이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이 초정상 자극의 현상이고, 여성들이 성형이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육체를 가꾸거나 바꾸어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자극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상대에게 원래 존재하지 않는 초정상 자극을 주어 자신을 받아들이거나 어필하게 만든다.
일본의 유아스럽고 귀여운 ‘가와이(Kawaii)'문화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 ‘가와이’는 ‘귀엽다’라는 뜻이다. 아이들이나 동물들 또는 품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귀여운 사물에 쓴다. 대개 예쁘고 사랑스럽고 작아 보호본능을 일으킨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반짝이고 눈물이 곧 쏟아질 것만 같은 커다란 눈망울의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이런 캐릭터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을 법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현실에 없기 때문에 더 열광한다. 마치 설탕이 현실에 없는 강력한 단맛을 보여주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과 같다. 이런 캐릭터를 실제 자신의 패션으로 삼는다든지, 화장이나 성형으로 만들어가려는 이들도 있다. 자극을 더 원하는 인간이 현실을 이를 통해 만들어가는 측면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초정상 자극에 대한 개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평균적으로 선호되는 것도 다른 측면이 있다. 따라서 초정상 자극이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각자는 이질감을 서로 느낄 수 있다. 포르노그래피의 상황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성형을 통해 마음대로 얼굴을 고치거나 로맨스 드라마처럼 일상을 구성할 수만은 없다. 그것은 인간이 자극을 상상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극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의 환경적 실현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초정상 자극에 빠지는 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에만 충실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본능을 벗어나는 존재일수록 우월하게 여긴다. 보통은 그런 본능에서 허우적거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는 이들일수록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상황에 빠져 버린다. 갑자기 자신이 사라졌을 때 컴퓨터 안의 포르노그래피가 염려된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그 본능을 억제하며 근엄하게 이미지를 구축해 온 사람이다.
그럴수록 누군가에게 약점이 된다. 인간인데 신인 것처럼 할수록 더욱 그러하다. 초정상 자극을 인정하는 쿨한 태도는 오히려 그런 위험을 낮춰줄 수도 있다. 영화 '찌라시'에서 백문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자극적으로 들린다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데 자신에 대한 평가가 무슨 소용이랴 싶다.
무엇보다 음식이나 패션, 영상, 사업, 경제, 정치이든 초정상 즉 과장된 자극과 신호는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버블 경제나 정치인의 위선이 부각되거나 배우자에 대한 살망, 스타가 실제 모습에 멘붕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초정상 자극에 대한 선호가 높을수록 가짜의 배신에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알도 아닌데, 열심히 뻐꾸기 알을 부화시키는 새처럼 말이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