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경영 이론과 사고법 100

로빈후드 효과의 역설

부드러운힘 Kim hern SiK (Heon Sik) 2013. 1. 8. 18:21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대치는 주민들에게 일본군의 동향을 알려주어 피하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주민들은 그를 일본군에게 넘기고 마는데...


[영화 속 경제]위험한 관계 - ‘부의 재분배’가 내수를 살린다

“네가 천사 같은 저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내기 하자. 내가 이기면 네 땅을 줘. 네가 이기면 나를 줄게. 단 조건이 있어. 그녀의 마음만 사로잡아. 네 마음을 줘서는 안 돼. 자, 내기 할까?”

여자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정복할 수 있는 남자가 있다. 상하이 최고의 플레이보이 ‘셰이판’(장동건 분)이다. 그가 갖지 못한 여자는 단 한 명, ‘모지위에’(장바이즈 분)다. 돈과 권력, 섹시함을 모두 소유한 팜므파탈이다. 모지위에는 상하이 가전재벌 ‘진즈환’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복수를 꿈꾼다. 진즈환은 좋아하는 소녀가 있다. 16세 ‘베이베이’다. 모지위에는 셰이판에게 부탁한다. 베이베이의 처녀성을 빼앗아달라고. 하지만 셰이판은 “너무 쉽다”며 거절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지목한다. 정숙한 미망인 ‘뚜펀위’(장쯔이)다. 내기를 건다. ‘저 여자를 정복하면 너는 내꺼라고’ 셰이판과 모지위에에게는 사람의 마음도 ‘게임’을 위한 도구다.


영화 <위험한 관계>(2012)는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다. 허진호는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호우시절>를 통해 물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그 물음은 <위험한 관계>까지 이어지지만 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뚜펀위의 무릎 위에서 죽어가는 셰이판의 모습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셰이판이 한눈에 반한 뚜펀위는 ‘기부천사’다. 화려한 기부행사가 열리는 동안에 호텔 밖으로 나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준다. 사망한 남편이 남긴 고가의 목걸이를 동북3성 피난민들을 위해 내놓는다. 그녀는 “여러분의 기부가 곧 그들의 희망임을 잊지 말아달라”며 기부를 유도한다. 언론은 그녀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칭한다.

사회·경제적으로 보면 기부는 세금과 함께 ‘부의 재분배’ 역할을 한다. 부자들의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전되기 때문이다. 세금이 강제력 있는 조치라면 기부는 자발적이라는 것이 다르다.

영화 속에서 모지위에는 기부행사 축사에서 “지금 상하이에 모여든 동북 피난민들은 우리와 공동운명체가 됐다”며 “그들이 다시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기부가 상하이뿐만 아니라 도시 모두를 위한 투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부가 재분배돼 서민들에게 가면 서민들이 그 돈으로 다시 물건을 사 내수를 살린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세금을 올리거나 기부를 강요하면 빈부격차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까? 로빈후드 효과(Robin Hood effect)를 조심해야 한다. 로빈후드는 탐욕스런 귀족과 상인, 성직자들로부터 재산을 뺏어 서민들에게 줬다. 서민들은 처음에 좋아했다. 그런데 귀족들은 로빈후드에게 빼앗긴 재산을 채우기 위해 서민들을 더 몰아붙였다. 부자상인들은 못살겠다며 마을을 떠나자 물건가격이 올랐다. 로빈후드의 선한 뜻과 상관없이 서민들은 더 고통을 받게 되는 이런 현상을 로빈후드 효과라 부른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올렸지만 사회 전체적인 부는 축소하고 서민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땅주인에게 보유세를 대폭 물렸더니 세입자의 전세금을 인상했다. 고소득자의 소득세, 고수익 법인의 법인세를 대폭 인상했더니 아예 해외로 떠나버려 수요와 투자가 침체돼 서민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로빈후드 효과는 보수파들이 부자 증세의 반대논리로 종종 인용한다. 그래서 고소득층의 세금을 올리더라도 기분좋게 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라는 주문이 나온다. 증세도 결국 사람의 문제다. 같은 세금을 올려도 흔쾌하면 문제가 없지만 불쾌하면 반발할 수 있다. 증세나 사랑이나 그 미묘함은 똑같다는 얘기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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