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 노무진' 속 이재명 정부 노동 인권 미래는
-태안화력 발전소 김용균·김충현 노동자 죽음을 대하며
글/김헌식(정책학/문화정보학, 중원대학교 특임교수)
“이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쓰는 노동자는 그 사람이 실수로 죽었거나 실수 아닌 거로 죽었거나 화약 옆에 가면은 죽기 쉬운 겁니다. 증인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화약 옆에 가야 하고 기계 옆에 가야 합니다. 기계 옆에 화약 옆에 가는 노동자는 아무리 조심해도 죽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8년 11월 9일 청문회에서 유찬우 풍산금속공업(주) 회장에게 지적한 것이다.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을 보면서 떠올린 말이다. 청문회 주요 내용은 5공화국 권력과 유착한 대기업의 행태를 질타한 것이지만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도 같이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는 노동자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가 있어도 기업은 항상 만전을 다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을 주며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에도 관통한다.
노무사 노무진은 보통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는 산재 문제를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 문제를 거창하게 내세우지는 않고 대중 드라마 차원에 연출 구성하고 있어 몰입으로 자아낸다.
노무진(정경호)는 본래부터 노동 인권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 아니게 설정된 이유일 것이다. 노무진은 샐러리맨이었지만 선배의 코인 투자 꾐에 넘어가 회사를 그만두어 생계가 막막해서 궁여지책으로 취직을 위해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할 뿐이다.
하지만 약속된 취직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우여곡절 끝에 자기 사무실을 차린다. 해마다 500명이나 쏟아진다는 노무사 시장에서 파리를 날리게 되니 노무진은 절망의 연속이다.
철저히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노무진을 통해 노무사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전하려고 한다. 결국 마지못해 처제의 제안으로 안전 관리 미비의 중소 사업장을 대상으로 협상 거래를 하며 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취하며 어려움을 타개한다. 하지만 본인이 안전사고를 당하게 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죽을 위기에 있는 노무진 앞에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의 화신이 나타난다.
노무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적인 거래를 통해 노동자 원혼을 풀어주는 거래를 맺으며 다시 생환하게 된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서 일종의 환타지 설정을 통해 이상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구성을 보이는 셈이다.
대중적인 전달 장치를 위해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현실의 사례들을 에피소드에 녹여 내고 있다.
예컨대 2화에서는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안전관리 미비와 안전 교육 부재, 부당 노동 지시 등으로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실습을 보낸 모교에서는 향후 취직률을 생각해 은폐하거나 책임 회피하는 모습은 영화 ‘소희’를 떠올리게 했다. 아울러 좀 더 구조적으로 산재 문제를 다뤄주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소수 재벌이 왜 이렇게 자기 돈처럼 막 갖다주느냐 말입니까? 그러니까 중소기업 단품 단가를 낮추니까 노동자들의 월급을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라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 말은 산재 관점에서 확장할 필요도 있다.
대기업이 납품 단가를 저렴하게 요구하다 보니 무리하게 현장 운영을 해서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특수한 경제 구조를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이 다룰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단순히 산재 사고가 현장 책임자 개인의 도덕 윤리적인 원인에만 있지는 않다.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는 대학생 친구를 간절히 원했다. 노동법에 있는 한자를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고민을 함께 나눠줄 수 있는 친구를 고대했다.
드라마에서 노무진은 처음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 노동자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전태일 열사가 원했던 대학생 친구가 노무사로 전환된 느낌을 준다.
다만 노무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록 정치인들이 자신의 입신을 위해 활동을 해도 노무진처럼 역할을 해주는 것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일 터다.
21대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인기가 있었던 선거로고송은 가수 유정석이 부른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오프닝곡 ‘질풍가도’였다. 이 노래의 핵심적인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세상에 도전하는 게 외로울지라도 함께 해줄 우정을 믿고 있어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이런 대선 선거로고송을 사용하고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산재 빈번한 세상에 도전하고 노동자와 우정을 나누는 밀접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특히 과거처럼 정권과 결탁하는 기업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가 일하는 사람의 생명이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8년 11월 9일 청문회에서 유찬우 회장에게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에는 5년 동안 34억 5000만 원이라는 돈을 널름널름 갖다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다 주다 죽은 노동자에게는 4000만 원 주느니 8000만 원을 주느니 가지고 싸워야 합니까? 그것이 인도적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하는 일입니까?”
노동자에게 줘야 할 돈은 주지 않고 정치 자금을 주는 정권은 종식되어야 한다. 특히 목숨을 잃은 노동자에게 돌아갈 보상과 배상은 더욱 그러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산재는 일어나고 죽거나 다치고 있다.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숨은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
정부가 정치 자금 수준은 아니더라도 친자본의 논리만 강조하면 곤란하다. 대한민국이 존립하는 근간인 그들의 목숨을 두고 흥정하는 일이 다시는 없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인도주의와 기업의 역할을 못 한다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산재를 막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소년공 시절 팔에 장애를 입은 건 개인이 아니라 공장 현장의 안전 관리 미비에서 벌어진 산재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죽고도 처벌받은 사람 ‘0명’인 상황에서 결국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희생당하는 ‘죽음의 외주화’ 비극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